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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화장품 팔던 다단계…"NFT로 하루 1% 수익" 노인 현혹

[진화하는 불법 다단계 사기]

<상> 묻지마 투자에 원금 날리는 고령층

사업 설명회 10곳 중 8곳, 전문용어 쓰며 신기술 강조

6080 "똑똑한 것 같다" 홀려…'돈된다' 말만 믿고 올인

가상자산 피해규모 5년來 최대…"신종수법 단속 시급"

대체불가토큰(NFT)·가상자산 등을 미끼로 한 불법 다단계 사기가 급증하는 가운데 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인근에 한 불법 다단계 업체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건율 기자






최근 김 모(70) 씨는 유망한 사업을 소개해주겠다는 지인의 말에 이끌려 선릉역 인근의 한 업체를 방문했다. 업체 대표는 과거 비트코인이 급등한 사례를 들며 비상장 코인 투자를 제안했다. 다음 달에 코인이 상장되는데 상장 이후 하루에 1%의 수익금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대체불가토큰(NFT)과도 연동돼 있다고 했다. 김 씨는 해당 투자 상품에 대한 이해는 없었지만 암호화폐와 NFT 등이 유망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만큼 해당 업체에 5000만 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결국 다단계 사기로 밝혀졌다.

최근 불법 다단계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가상자산·NFT·로봇 등 고령층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투자 상품을 미끼로 거액을 만질 수 있다며 현혹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7일 경찰 관계자는 “조희팔 사건처럼 과거에는 불법 다단계 사기가 의료기기·화장품과 같은 실물을 이용해 벌어진 반면 최근 발생하는 불법 다단계 사기는 가상자산, NFT, 비상장 주식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투자 상품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실제 미디어에 등장했던 유망한 업체와 기술들을 내세워 피해자들을 유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업 초기에는 실제로 약속한 수입을 지급하면서 더 큰 금액을 투자하라고 유도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실제 서울경제 취재진이 불법 다단계 업체의 사업 설명회 10곳을 방문한 결과 8곳이 NFT·암호화폐·로봇 등 최신 기술을 이용해 고수익을 약속했다. 나머지 2곳도 그럴 듯한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신뢰감을 줬다. 대부분의 업체는 ‘트래블룰(자금이동 추적 시스템)’ 등 가상자산과 관련된 전문 용어를 사용하며 전문성을 강조했고 피해자들은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투자에 참여했다. 이들이 노리는 대상은 주로 은퇴 이후 퇴직금과 자산 투자로 노후를 꾸려가는 고령층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불법 다단계 업체 사업 설명회에 참석했던 최 모(68) 씨는 “업체 대표가 정말 똑똑한 것 같다”며 “나는 들어도 모르는 이야기를 저렇게 술술 내뱉는 것을 보니 전문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업체가 내세운 아이템은 ‘가상자산을 이용한 NFT 랜덤박스 쇼핑몰’이었다.

불법 다단계 업체도 고령층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시인했다. 본지와 만난 불법 다단계 업체 대표 A 씨는 “대부분의 고령층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더 대단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며 “요즘 다단계 업체는 그 지점을 노려 사업을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불법 다단계 업체 사무장 B 씨도 취재진에게 “나이 드신 분들은 제시하는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며 “사업이 어떻게 발전할지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NFT·암호화폐·로봇 등 신기술을 앞세운 불법 다단계 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가상자산과 관련된 유사수신행위 범죄 피해액은 벌써 9527억 원에 달했다. 이 같은 추세를 고려하면 연말까지 전체 피해액은 1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단일 사기 사건으로 피해액 2조 2400억 원에 이르는 브이글로벌 사태가 발생한 2021년을 제외하면 올해가 최근 5년 중 가장 피해 규모가 크다. 최근 5년간 가상자산을 이용한 유사수신행위 범죄 피해액은 2018년 1693억 원, 2019년 7638억 원, 2020년 2136억 원 2021년 3조 1282억 원을 기록했다.

불법 다단계 사기는 급증하는 반면 식음료와 패션 뷰티 등 전통 산업 기반의 합법 다단계 업체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다단계 업체는 2020년 말 135개에서 2021년 말 125개, 올해 3분기 118개까지 줄었다. 대부분 건강식품·화장품 등 실물 거래가 핵심 수익원인 업체들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자본금 5억 원 이상을 갖추고 소비자피해보상보험을 체결하는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합법적인 다단계 업체로 등록할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 규모는 비슷하지만 신규 진입하는 업체보다 폐업하는 회사가 더 많아 숫자가 줄고 있다”며 “주로 작은 업체들이 경쟁에서 뒤처져 폐업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등 신종 기술을 이용한 다단계 사기 피해가 커지고 있는 만큼 업체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가 힘들어졌고 수입원도 불안정해지면서 불법 다단계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강남 등 불법 다단계가 집중된 지역을 중심으로 철저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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