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금융지주사 회장과 금융협회장, 금융연구기관장 등이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의 2023년 업무계획 보고 자리에 초대된 것은 ‘파격’이라는 관전평이 나온다. 민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물가·고금리 등 민생경제 당면 현안을 두고 머리를 맞대면서 국정의 동반자로 공인됐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는 오후 3시에 시작돼 당초 예정된 토의 시간을 훌쩍 넘어 종료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한치 물러섬이 없는 끝장 토론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최고 정책결정권자가 정책파트너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경청하며 기를 한껏 세워줬지만 일부 민간 참석자는 돌아가는 발걸음이 오히려 무거워진듯하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는 “높아진 위상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새해 들어 대형 금융사들은 금융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책을 앞다퉈 내놨다. 은행연합회는 26일과 27일 4000억 원 규모의 중소기업 지원 방안과 5000억 원 규모의 기금 조성을 잇따라 발표하는 등 성의를 표시했다. 마른 수건 쥐어짜듯 대출금리 인하 여력 짜내 8%대를 향하던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6%대까지 되돌렸다.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비대면 이체수수료 면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당정의 금융권을 향한 고통 분담 요구는 갈수록 더 노골화하리라는 게 중론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이 발생한 이익의 3분의 1을 주주환원하고 3분의 1을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면 최소한 나머지 3분의 1은 국민 내지 금융소비자 몫으로 해야 한다”며 금융의 공적 역할을 강조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고금리 시대에 국민들의 이자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당과 정부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금융위가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로 올 상반기 내 특별대손준비금 추가 적립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금감원에 부여하는 것도 금융지주사와 은행 입장에선 골칫거리다. 특별대손준비금을 추가로 쌓게 되면 배당 가능 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행동주의펀드는 배당을 더 늘리라며 공개 압박하고 있어서 진퇴양난이기 때문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여러 가지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충분한 손실흡수능력을 갖추고 있느냐가 핵심적인 관심사”라며 “배당은 약간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금융지주사 회장 선임을 둘러싼 잡음에는 “CEO 선임 절차가 조금 더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할 필요는 있다라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은 1분기에 입법예고될 예정이다.
/유현욱 기자 ab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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