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구본무 전 LG(003550)그룹 회장의 상속재산을 두고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어머니·여동생들과 가족 분쟁에 휘말렸다. 경우에 따라 구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크게 위축되고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사안이다. LG 측은 “재산 분할을 요구하면서 LG의 전통과 경영권을 흔드는 것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상속재산 다시 나눠야” 갈등 법정으로=10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구 회장의 어머니인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는 최근 구 회장을 상대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구 회장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상속 범위를 넘어 재산을 상속 받았고 이에 따라 상속재산을 다시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 회장은 소송 제기에 앞서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가족 내 송사를 막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 회장은 구 전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2004년 구 전 회장의 양자로 입적했다. 구 회장은 LG그룹 총수 일가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구 전 회장의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구 전 회장의 배우자인 김 여사, 딸인 구 대표와 구 씨와는 원래 큰어머니, 사촌 관계인 셈이다.
2018년 작고한 구 전 회장은 LG 주식 11.28%를 비롯해 총 2조 원 규모의 재산을 남겼다. 구 회장을 비롯한 구 전 회장의 유족들은 2018년 11월 각각 LG 지분을 비롯한 재산을 상속인 합의에 따라 나눠 받았다. 유족 4명이 내야 할 상속세는 모두 9900억 원에 달한다.
LG에 따르면 김 여사 등 상속인 4명은 수차례 협의를 통해 LG 주식 등 경영권 관련 재산은 구 회장이, LG 주식 일부와 개인 재산(금융투자 상품·부동산·미술품 등)은 세 모녀가 받는 것으로 의견을 정리했다. 이에 따라 구 회장은 LG 지분 8.76%, 장녀인 구 대표와 차녀 구 씨는 각각 2.01%, 0.51%를 받았다. 세 모녀는 또 구 전 회장의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단독주택 등 5000억 원 규모의 재산을 물려 받았다.
◇모녀 승소 시 지분 격차 역전=세 모녀는 별도의 유언이 없었던 만큼 구 전 회장의 상속분을 법정 상속 비율에 따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 상속 비율에 따르면 배우자인 김 여사가 1.5, 나머지 자녀들이 1 대 1 대 1의 비율로 재산을 분할해야 한다. 이들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구 전 회장의 지분은 김 여사에게 3.75%, 구 회장과 두 자매가 각각 2.51% 받게 된다.
현재 구 회장의 LG 지분율은 15.95%다. 세 모녀의 주장대로 재산을 다시 나누고 각자가 원래 갖고 있던 지분을 더하면 구 회장의 지분율은 9.7%로 줄고 세 모녀는 14.04%로 치솟는다. 양측 간 지분율 차이가 역전되면서 경영권을 위협할 수준이 된다. LG 측은 “합의에 따라 4년 전 적법하게 완료된 상속”이라며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가족 협의를 거쳐 재산 상속을 마친 뒤 4년이 넘어 제척기간(3년)이 지났고 관련 내용 또한 세무 당국에 투명하게 신고됐다는 설명이다. 법조계에서도 상속재산 분할에서는 상속인 간의 합의가 존중되는 만큼 뒤늦은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구 회장이 보유한 LG 지분은 ‘LG가(家)’를 대표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만큼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 또한 강조했다.
LG그룹 측은 총수 일가의 전통을 흔들었다는 점에서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사업 초기부터 허 씨 가문과 동업했고 후손들도 많아서 창업회장부터 명예회장·선대회장에 이르기까지 집안 내, 회사 내에서 재산을 두고 다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가풍이 있다”며 “이것이 LG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에 대해 세 모녀 측은 “경영권 분쟁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들의 소송대리인 측은 “오히려 가족간의 화합을 위해 상속과정에서 있었던 절차상의 문제를 이제라도 바로잡기 위해 제기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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