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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5조 넘으면 한전채 발행 또 막혀…협력사 연쇄도산 우려

[다시 커지는 '한전채 블랙홀']전기료 동결에 적자 눈덩이

작년말 발행한도 2배→5배 늘려

올들어 이미 5.3조 한전채 찍어

올 영업손실 전망치 12.6조 달해

이대로면 전력산업 생태계 붕괴





“에너지공기업들이 ‘빛(light)’이 아닌 ‘빚(debt)’을 만드는 기관으로 전락했습니다.”

한 발전공기업 관계자는 2일 전기·가스요금 조정 결정 때마다 반복되는 사달을 이같이 표현했다.

특히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과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을 불러들여 리스크 요인을 집중 점검하려다 회의 직전 돌연 이를 취소했다. ‘국민 부담 경감’을 명분으로 공공요금을 동결해놓고 곧바로 에너지 공기업이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은 메시지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산업부는 “공기업 재무 상황 등 종합적인 점검에 시간이 소요돼 불가피하게 연기했다”고 해명했지만 이런 소동 자체가 정치적 요금 결정의 후폭풍이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전과 가스공사의 경영난을 악화시키는 요금 산정 체계에 대한 시장 불신만 키우고 있다고 꼬집는다.

당초 한전은 이날 회의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끝내 무산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리스크를 집중 거론할 예정이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차입 경영’ 중인 한전이 찍어낼 대규모 한전채가 야기할 수 있는 채권시장 교란이다. 가뜩이나 실리콘밸리은행(SVB)·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 등으로 투자 심리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해 4분기 레고랜드 사태 이후 한전채 쏠림 현상이 극심해지면서 흑자 도산을 걱정하는 기업들이 속출했고 정부는 긴급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한전은 전기를 원가 이하에 팔다 보니 매달 네 차례에 걸쳐 지급하는 전력구입대금 충당을 위해 공사채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연료비가 급등했던 지난해 한전채 발행 규모는 37조 2000억 원으로 2년 만에 12배 증가했다. 이 중 국내 한전채 발행액은 35조 원으로 국내 회사채 발행액(76조 8000억 원)의 45.6% 수준에 달한다.

문제는 사실상 정부가 지급 보증을 서는 데다 한때 연 5% 후반의 고금리인 한전채가 과다 공급되면서 국내 채권시장 수요를 잠식하고 채권금리의 동반 상승을 부추겼다는 점이다. 공기업 한전이 제 살길을 찾아 빚을 냈을 뿐인데 애꿎은 일반 사기업들이 휘청거린 이유다. 일부 대기업조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파리가 날리자 발행 계획을 접어야 했다.

한전은 올 들어서도 이미 5조 3000억 원어치의 한전채를 찍었다. 이번 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적자를 메우기 위한 채권 발행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전이 올 1분기 5조 3333억의 적자를 낼 것으로 증권가는 추정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대로 올 연말까지 전기료가 동결될 시 한전채 누적 발행 규모가 100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전이 채권을 발행해 적자를 메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적자가 쌓일수록 자본금을 갉아먹어 사채 발행 한도도 쪼그라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전의 사채 발행 한도는 자본금과 적립금을 등을 합한 총액의 다섯 배를 초과할 수 없다. 지난해 말 한시적으로 두 배에서 다섯 배로 늘렸지만 천문학적인 적자가 쌓이면서 추가 법개정 없이는 역부족인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NH투자증권은 한전의 올해 영업손실 전망치를 기존 8조 6000억 원에서 12조 6000억 원으로 확대했다. 적자 해소를 위한 유일한 길인 전기요금 인상이 쉽지 않다는 판단하에 눈높이를 낮춘 셈이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냉방비·난방비에 대한 국민 부담을 고려하면 남은 하반기 추가 인상도 기대하기 어렵다”며 “자본감소로 사채 발행 한도에 여력이 없기 때문에 자금 조달 이슈는 다시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한전 스스로도 올해 5조 원 이상 적자를 낼 경우 2024년 공사채 발행이 불가능해진다고 인지하고 있다. 한전에서 시작된 재무 위기가 발전사·협력사의 동반 부실로 이어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전 관계자는 “6500여 개 협력사의 연쇄 도산, 대규모 실업 사태 발생 등 전력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칫 매년 6조~7조 원 수준인 송·배전망 투자가 위축되면서 전력 계통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분기 가스요금이 동결됐던 가스공사는 갈 길이 더 바쁘다. 요금 인상이 무산되면 환수가 어려운 민수용 미수금이 지난해 말 8조 6000억 원에서 올해 말 12조 9000억 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한 연간 이자비용은 4700억 원으로 하루 13억 원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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