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003490)이 아시아나항공(020560)과의 기업결합을 위해 법률 비용만 1000억 원 이상을 쓰고 운수권까지 포기하면서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국내 1·2위 항공사의 합병이 성사되면 이른바 ‘밀도의 경제’가 실현돼 고정비가 크게 줄어들어 경영 효율성이 높아진다. 대한항공이 법률 비용 지출이나 운수권 포기를 ‘투자’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을 위해 지난 2년간 국내외 로펌 및 자문사에 1000억 원 이상을 썼다. 대한항공은 2021년 1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해 미국·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 국내외 14개국 경쟁 당국에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현재 11개 당국에서 승인을 받거나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심사가 종료됐다. 미국·EU·일본 3개 당국의 승인만 남았다. 총 100여 명으로 구성된 5개 기업결합 태스크포스(TF)가 구성돼 국가별 전담 전문가 그룹을 상설 운영하며 나머지 승인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두 회사가 취항하는 노선에 경쟁 항공사들이 많을수록 합병 승인은 쉬워진다. 각국 경쟁 당국은 결합의 선제 조건으로 경쟁 환경을 복원하고 지속 운항할 수 있는 신규 항공사를 시정 조치에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 등 경영진은 미국·유럽 경쟁사를 방문해 신규 시장 진입을 설득하고 있다. 시장 지배력 강화가 아닌 약화를 선택하는 것이다.
합병 자문료에만 1000억 원 이상을 쓰고 경쟁 항공사를 노선에 끌어들이는 것은 합병을 통한 이점이 더 많아서다. 항공 산업은 연료비, 리스료, 인건비, 정비 유지비 등 고정비가 전체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내식, 지상 조업 등 변동비 비중은 낮다. 통합을 통한 비용 효율화로 장기적인 이익은 커질 수 있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해외 당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 1000억 원을 지출하고 신규 시장 진입자를 유치하는 것은 항공 업계의 유일한 생존 방안이며 일종의 투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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