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금리 역전 폭이 사상 최대인 1.75%포인트까지 벌어지면서 통화정책의 최대 변수로 꼽혔던 원·달러 환율이 한 달 만에 달러당 1310원 아래로 떨어졌다. 기대인플레이션마저 3.5%로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25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5.3원 내린 1312.7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4.1원 내린 1314원으로 출발해 장중 초반부터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1308.1원까지 떨어졌다. 장중 기준으로 환율이 1310원 아래로 내린 것은 4월 17일(1305원)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 긴축이 종료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부채 한도 협상 역시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시장심리가 회복됐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수도 원화 강세로 나타났다. 그동안 달러화 약세에도 원화 가치는 불안한 흐름을 보이면서 17일 장중 1343원으로 연고점을 넘었지만 불과 4거래일 만에 1310원 밑으로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 하락에 정부와 한은도 한숨 돌리게 됐다.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사상 최대로 벌어지고 환율 변동성이 커지자 외환 당국은 한국가스공사에 달러 분할 매수를 요청하는 등 시장 안정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시장에서는 당국이 환율 1340원 돌파를 막기 위해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도 단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화 약세 기대감이 커지면 외국인 자금이 물밀 듯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기대대로 하반기 수출 회복에 무역수지 적자 폭이 줄어든다면 원화 약세 둔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근 원화가 유독 약세를 보인 것은 대중(對中) 수출 부진으로 인한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국회에 출석해 “5월이 지나면 (무역수지) 적자 폭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5월 기대인플레이션이 전월 대비 0.2%포인트 하락한 3.5%로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한 것도 당국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7%로 14개월 만에 3%대로 진입하면서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일시적이지만 물가상승률이 2%대로 진입할 가능성도 공식화했다.
금통위가 이달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환율과 물가 안정이 지속될지는 미 연준의 통화정책과 무역수지 적자 개선 정도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6월 동결을 시사했으나 일부 연준 위원들은 여전히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을 내놓고 있어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다.
수출 역시 변수가 많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중국 경기 정상화, 반도체 수출 단가 회복, 미국 경기 연착륙이 맞물리면 3분기 말부터 무역수지 흑자 전환이 가능할 수 있다”며 “다만 수출 경기 개선 시점은 중국 경기 정상화 불확실성과 미중 갈등 등 변수가 좌우할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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