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임원진 전원의 사표 제출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놓은 것은 철근 누락 사태에서 드러난 LH 조직의 난맥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환골탈태 수준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하 주차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LH 단지 중 철근 누락이 발견된 일부 단지를 사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실무자 자체 판단으로 지난달 발표에서 제외했고 전수조사 대상도 뒤늦게 추가로 발견했다. 조직 업무의 가장 기본인 통계 관리조차 제대로 안 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LH에 대한 불신이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11일 LH가 철근 누락이 확인됐다고 추가로 공개한 5곳은 △화성남양뉴타운 B10(386개소 중 3개소 누락) △평택소사벌 A7(156개소 중 3개소 〃) △파주운정3 A37(654개소 중 4개소 〃) △고양장항 A4(1507개소 중 4개소 〃) △익산평화(1326개소 중 4개소 〃) 등이다. 지난달 30일 전수조사 결과 발표 때 해당 단지 5곳을 ‘철근 누락 정도가 경미하다’고 자체 판단해 발표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이에 LH의 무량판 단지 중 철근 누락이 확인된 단지는 15곳에서 20곳으로 늘었다. 이 사장은 “(해당 단지 5곳은) 누락된 철근이 5개 미만이고 즉시 보강이 완료돼 안전에 우려가 없다는 담당자들의 자체 판단으로 (사장에게) 보고조차 안 됐다”면서 “참담하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며 고개 숙였다.
LH 전수조사의 허술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하 주차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으나 전수조사에서 누락된 무량판 아파트 1개 단지가 이날 또 추가로 확인됐다. 이달 9일 10개 단지가 조사 대상에서 누락된 것으로 확인된 데 이어 이틀 만에 또다시 추가 누락 단지가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전수조사 대상 아파트 단지는 당초 91곳에서 102곳으로 확대됐다.
이 사장은 이번 사태가 LH의 조직 구조에서 비롯되고 있다며 사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 인적 쇄신과 조직 혁신을 진두지휘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LH가 주택공사·토지공사 통합으로 출범한 지 14년이 흘렀지만 조직의 지나친 비대화로 보고 체계가 원활히 작동하지 못하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졌다”며 “통합 후에 자리 나눠 먹기를 해 건축직이 아닌 건축도면을 볼 수 없는 토목직이 구조견적단에 있더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내부 혁신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우선 철근 누락 관련 경찰·공정거래위원회·감사원 등의 조사를 토대로 인적·조직 쇄신을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혁신의 큰 방향으로 이날 조직의 권한과 규모 축소도 제시했다. LH의 권한이 조직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작고 강한 조직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이 사장은 “지난 정부에서 비정규직에서 정규화가 된 인력이 2400여 명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인력들이 LH에 정규직으로 오면서 결국 LH가 비대화됐다”며 “현재 주거 급여 관련된 직원이 600여 명이 되는데 이 인력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이관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사 조직을 대폭 줄이고 지역본부의 내근 조직도 줄여 현장 실행 능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서는 감리 업체 선정 권한을 넘기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혁신 방안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LH가 쇄신 방안을 밝힌 것은 비단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그동안 제대로 효과를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21년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가 불거졌을 때도 당시 LH는 비대해진 조직을 효율화하기 위해 기능과 인력을 과감하게 줄이겠다면서 1만 명 수준인 인력을 20% 이상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2020년 9683명이던 LH 임직원 수는 2021년 8979명, 2022년 8951명, 올해 8885명으로 3년간 798명(8.2%)만 줄었다. 20% 감축 목표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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