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리반트의 비급여 약값만 추가 부담하면 저도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 처방을 받을 수 있는 건가요?"
폐암 4기 환자인 A씨(40대·여)는 최근 주치의인 안병철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를 찾아와 뉴스 기사를 내밀었다. 5월부터 기존 건강보험 적용 항암제와 비급여 항암 신약을 함께 사용할 경우 기존 약에 대한 건보 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급여기준 개선안을 언급한 것이다.
A씨는 올해 3월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엑손 19 결손 변이가 확인돼 표적항암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를 처방받고 있다. 렉라자와 EGFR-MET 표적 이중특이적 항체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 병용요법은 글로벌 임상 결과 무진행 생존기간(PFS)이 23.7개월로 나타났다. 렉라자, 타그리소 같은 표적항암제만 복용할 때보다 무진행생존기간(종양 크기가 더 나빠지지 않은 채 생존한 기간)을 7개월 이상 연장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치료법을 EGFR 엑손 20 삽입 변이와 EGFR 엑손 19 결손 또는 엑손 21 치환 변이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의 1차와 2차 이상의 치료제로 허가했다. 그러나 A씨는 병용요법으로 전환하지 못한 채 렉라자 단독요법을 유지 중이다. 비급여 상태인 리브리반트의 약값은 연간 1억 원이 넘는다.
문제는 렉라자를 단독 처방받을 경우 급여가 적용돼 한달 기준 본인부담금은 30만 원이 채 안되지만 리브리반트와 병용할 경우 두 약 모두 비급여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병원에 약값을 지급한 뒤 각각의 제약회사로부터 약값의 일부를 환급받아도 첫 달 기준 본인부담금이 1300만 원 가까이 되다보니 대다수 환자들은 병용요법을 엄두도 못 낸다. 안 교수는 "이달 고시된 항암제 병용요법의 부분급여 관련 세부고시가 나오지 않아 두 약 모두 비급여로 처방하고 있다"며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 시 생존기간이 1년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고시 개정 소식을 듣고 기대했다가 크게 낙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복지부, 항암제 병용요법 부분급여 급여 고시 개정…암환자들 “숨통 트였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기존에 건보가 적용되던 항암제와 새로 개발된 비급여 항암신약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 기존 건보 혜택이 유지되도록 한다는 항암제 병용요법 부분급여 급여 고시가 세부기준 없이 시행되며 진료현장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고시 개정을 통해 '요양급여로 인정되고 있는 항암요법과 타 항암제를 병용하는 경우 기존 항암요법에는 기존의 본인부담을 적용하도록 한다'고 공표했다.
확정고시를 통해서는 항암요법제 중 부신호르몬제·난포 및 황체호르몬제·방사성 의약품 항암면역요법제 등과 항구토제, 암성통증 치료제 등 병용대상이 될 수 있는 치료제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고시대로라면 대부분의 항암 병용요법에 급여 혜택이 적용될 것으로 이해된다. 실제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이번 개정안을 두고 "급여기준 개선의 첫걸음을 뗐다"며 환영했다.
◇ 암환자 문의 빗발치는데…현장에선 “삭감 우려 탓에 급여 처방 못해”
그러나 정작 현장에선 고시 시행 보름이 지나도록 급여처방이 나오질 못하고 있다. 원칙만 발표 됐을 뿐 세부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급여적정성을 심사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개별 치료제가 급여 적용을 받았더라도 병용요법으로 새 적응증 허가를 받으면 건별로 급여 유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며 난색을 표한다. 고시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가 열렸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마련되지 않았다. 제약업계에서 질의를 넣어도 속시원한 답변이 나오질 않으니 병원들도 삭감이 우려돼 선뜻 급여 처방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민원이 빗발치자 심평원은 ‘4차 암질환심의위원회’를 예정보다 앞당긴 14일에 개최했다. 대한종양내과학회, 항암요법연구회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54개 병용요법이 이날 논의선상에 올랐고 그 중 35건에 대해 다음달 1일 급여 적용을 추진하기로 결론을 냈다. 구체적인 명단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심평원 관계자는 “기존 항암요법과 타 항암제 병용요법에 대해 세부사항 고시를 적용함에 있어 임상현장의 혼선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도모하고자 허가 범위 및 학회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병용요법 대상 목록을 논의했다”며 “6월 1일 시행에 앞서 세부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재정 고민 없이 섣부른 제도 개선 발표…암환자들에 희망고문
일각에서는 막대한 추가 재정이 투입되는 정책임에도 정부부처간 엇박자로 인해 임상현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암환자들에게 희망고문을 안겼다고 비판한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복지부가 급여 심사의 실무를 담당하는 심평원은 물론 건강보험공단과도 협의없이 고시를 밀어붙였다는 의혹이 많다"며 "생색내기식 정책으로 인해 하루하루가 소중한 말기암 환자들의 혼란만 커졌다"고 말했다. 신약 가격이 갈수록 비싸지고 암치료에서 병용요법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환자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안 교수는 “신약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암환자들의 마지막 생명줄”이라며 “제한된 건보 재정과 수요 증가를 고려할 때 건보재정 시스템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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