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이후 건축된 아파트 단지는 용적률이 높아 사업성이 떨어지는 탓에 재건축이 어려운 곳이 많다. 이에 재건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사비가 낮고 공사 기간이 짧은 리모델링 사업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늘어나고 있다. 리모델링은 기존 골조를 유지·보강하는 사업인 만큼 건축폐기물도 재건축에 비해 적다. 여기에 토지기부채납이나 임대주택 배치 의무가 없고 적용되는 정부 규제도 적다는 특성 때문에 주택정비사업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며 시장에서 리모델링 수요는 꾸준히 이어지는 추세다.
사당동 우·극 리모델링 가시화…4·7호선 더블 역세권에 4000가구 신축 변모
30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 리모델링 아파트 단지 대어로 꼽히는 동작구 사당동 ‘이수 극동’과 ‘우성2·3차’ 단지 리모델링 조합은 이달 24일 조합 총회에서 포스코이앤씨를 시공사로 최종 결정했다. 리모델링 완료 시 동작구 내 약 4000가구 규모의 신축 대단지가 탄생하게 되는 이번 사업은 예상 사업비만 2조 원에 달한다.
기존 지하 2층~지상 20층 26개 동, 3485가구였던 ‘우성2·3차’ 단지는 수평·수직증축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지하 6층~지상 27층 26개 동, 3987가구 규모로 늘어난다. 증가하는 502가구는 일반분양할 예정이다. 포스코이앤씨가 제안한 단지명은 ‘더샵 이수역 엘플레노(ELPLENO)’이다. 스페인어로 ‘완전함(PLENO)’을 뜻하는 플레노를 단지명에 넣었다. 이 단지에는 포스코 프리미엄 철강재 포스맥을 적용한 커튼월 외벽과 문주 디자인 등 더샵의 특화 외관이 사용된다.
조합은 포스코이앤씨와 함께 설계·인가·이주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단점으로 꼽히던 가파른 단지 내 경사로는 평탄화 작업을 통해 평지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평탄화 과정에서 땅을 파내면 건물의 하부 골조가 드러나는데 이 골조를 보강한 뒤 건물 자체를 필로티 구조로 바꾸는 방식으로 공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평탄화 작업으로 단차가 생긴 아래 동과 윗 동 사이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다.
앞서 조합 측은 재건축도 검토했지만 현재 용적률이 252% 수준이어서 일대일 재건축으로 추진할 경우 일반분양 물량이 거의 없어 분담금이 큰 점 때문에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돌렸다. 분담금 부담은 낮아지고 사업 속도는 빨라져 2030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리모델링이 본격 추진되면서 지난달 26일 ‘이수 극동’ 전용면적 59㎡는 11억 5000만 원에 계약이 이뤄지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우성2차’도 이달 12일 전용면적 84㎡가 15억 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사당동 A중개업소 대표는 “서울 지역 3대 업무지구인 강남·여의도·종로를 30분 이내로 오갈 수 있는 입지에도 불구하고 균질한 신축 아파트 단지가 많지 않아 그동안 시장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지 않았다”며 “하지만 우·극 단지의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방배동 재개발로 인한 신축 단지 완성과 맞물려 이수역 일대가 신도시급으로 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근 신축 단지 시세와 비교해 보면 전용 83㎡ 매매가격이 20억 원은 무난하게 넘어설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당동 B중개업소 대표는 “인근 4년 차 이수푸르지오더프레티움(514가구)이 지난달 5일 19억 7000만 원에 거래됐고 현재 매물은 20억 원대”라며 “‘우성2·3차’ 단지는 4000가구에 달하는 대단지여서 리모델링 완료 시점에는 가격이 좀 더 높게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촌·목동도 리모델링 바람
사당동 우·극 단지뿐 아니라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는 단지가 적지 않다. 대부분 기존 용적률이 300%를 넘는 한강변의 용산구 동부이촌동 일대 단지가 대표적이다. 이달 14일 이촌동 ‘한가람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은 서울시의 경관심의를 통과했다. 지하 3층~지상 22층, 2036가구이던 한가람아파트는 리모델링을 통해 지하 6층~지상 27층, 공동주택 2213가구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용적률은 기존 358%에서 499%로 확대된다. 시공사는 GS건설·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으로 한가람 리모델링 조합은 지난해 말 컨소시엄과 사업비 1조 원 규모의 가계약을 체결했다. 조합은 내년 사업계획승인을 거쳐 2027년 본계약 및 이주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가람아파트는 지난해 8월 서울시가 재건축 사업성 개선 방안을 발표하자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조합은 사업 속도와 재건축 전환 시 발생하는 높은 분담금 등을 고려해 리모델링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촌코오롱’ 아파트도 리모델링 교통영향평가를 마치고 건축심의를 앞두고 있다. 시공사는 삼성물산으로 기존 834가구에서 948가구로 탈바꿈한다. 이촌 현대를 리모델링한 ‘이촌 르엘’은 사업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 단지는 시공사인 롯데건설과 조합이 공사비 증액과 준공 일정에 합의하면서 지난해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27년 2월 750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조성된다.
‘디에이치 아베뉴 이촌’으로 리모델링되는 ‘이촌 강촌’ 단지도 올해 3월 건축 심의를 통과했다. 일반분양은 112가구로 2027년 12월 분양 예정이다. 단지는 2027년 6월 착공에 들어가 2031년 6월 준공될 예정이다. 이촌 우성아파트도 지난해 서울시에 사전자문 신청을 마친 후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되면 용산구 이촌동에 들어서는 리모델링 아파트 규모는 5364가구에 달한다.
양천구에서는 목동신시가지 1~14단지 인근의 우성1·2차, 한신청구 등의 단지가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목동 우성1차 리모델링 사업은 GS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올해 초 리모델링 허가 관련 주민 동의율 75%를 넘겼고 조합은 공동주택 리모델링 행위허가 요청서를 양천구청에 접수할 예정이다. 주택법 제67조에 따라 세대수가 증가하는 리모델링 사업은 기존 주택의 권리 변동, 비용 분담 등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 사업계획을 승인받고 행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조합은 8월에 구청의 사업계획승인을 거쳐 내년 7월 이주를 시작해 2031년 5월에 입주한다는 목표다.
신정동에 위치한 목동 우성2차 단지 리모델링 사업은 시공사가 롯데건설로 지난해 12월 서울시에서 지구단위계획 지정 및 경관계획안이 가결됐다. 현재 1140가구에서 리모델링 후 총 1311가구로 일반분양 물량 171가구가 늘어나게 된다.
1단지 인근의 목동한신청구아파트(1512가구) 리모델링추진위원회는 지난달 정비사업 진행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리모델링 수요가 70.92%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재건축 수요는 6%에 불과했다. 시공사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추진위는 삼성물산·포스코 측과 리모델링 사업 관련 논의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 부럽지 않은 리모델링 사업
공공기여·재건축초과이익 부담 등 재건축을 둘러싼 문제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여기에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 등 건축 원가가 오르며 재건축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이에 주택정비사업 시장에서 리모델링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비용은 적게 들고 사업 속도는 빠르면서 신축 단지의 거주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수요를 끌어당긴다.
앞서 포스코이앤씨가 국내 최초 수직증축으로 완공한 송파구 가락동 ‘잠실더샵루벤(성지아파트 리모델링)’은 2022년 1월 착공에 들어가 38개월 만에 준공을 마치고 올해 3월 입주를 시작했다. 송파구 A중개업소 대표는 “잠실더샵루벤과 더샵둔촌포레 단지는 리모델링을 선택함에 따라 재건축 사업 시 겪을 수 있는 관할 구청과의 각종 기부채납 관련 갈등이 없었다”며 “공사비 분담금도 3억 원이 채 안돼 조합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리모델링 성공 단지인 강남구 개포동 ‘개포더샵트리에(우성9차 리모델링)’는 2019년 4월에 착공해 2년 8개월 만인 2021년 12월에 완공하고 입주했다. 지난해 10월 입주한 강동구 둔촌동 ‘더샵둔촌포레(둔촌현대1차 리모델링)’도 공사 기간이 38개월로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