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의 조직 개편을 두고 국정기획위원회의 막판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예산 기능을 떼어내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는 방향은 정해졌지만 기획예산처장의 격을 놓고 의견이 갈리면서 최종 결정도 늦어지는 모양새다.
9일 정치권과 관가에 따르면 국정위는 대통령실에 보고할 기재부 조직 개편 최종안을 두고 내부 조율을 거듭하고 있다. 당초 국정위는 기획예산처장을 차관급으로 하는 초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내부 검토 과정에서 예산처장을 장관급으로 둬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르면서 이한주 위원장도 다시 숙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급 격상 배경엔 현실론이 자리잡고 있다. 예산 기능을 분리하더라도 각 부처 사업을 총괄하고 조율할 수 있는 조정력을 확보하려면 장관급 위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처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정책을 차관급이 조율하기엔 권한과 위상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기획예산처는 모두 장관급 부처였다. DJ 정부 초기 기획예산위원회와 함께 '예산청'이라는 차관급 조직이 잠시 운영됐지만 이후엔 줄곧 장관급이 유지됐다. 이 위원장도 부처 간 조정 기능을 고려해 장관급 처장 요구를 무조건 반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예산의 ‘힘’을 빼야 한다는 명분론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예산처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할 경우 예산 권한이 다시 비대해지고 다른 경제 부처와의 권한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름만 바꿨을 뿐 권한과 구조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국정위 내부에서도 이러한 명분론과 현실론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예산처의 장관급 격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변수다.
기획예산처에 기재부의 정책 조직(재정정책국, 재정관리국, 미래전략국, 경제구조개혁국) 가운데 일부를 넘겨주는 방안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과의 통상 협상과 가계부채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기재부 조직개편이 속도 조절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미국과의 협상이 고비를 맞은 시점에서 경제 컨트롤타워를 흔드는 것이 적절한지 회의론이 나오고 있어서다. 집값과 가계부채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는 금융위원회 정책 기능이 신설 재경부에 흡수될 경우 정책 일관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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