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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 사건...음모냐, 권총 기술의 진화냐

9mm와 22구경 권총으로 50명 이상 사상 불가능하다는 시각 많아
외형은 과거와 비슷하지만 성능이 급속 발전해 가능하다는 분석도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은 한손으로 쏘기에는 무리라는 9mm 권총과 호신용 정도인 22구경 두 자루로 5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는 점에서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권총의 외형은 과거와 비슷하지만 성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것이 이유일 것이라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장면 1>
지난 1902년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 미군이 고민에 빠졌다. 원주민의 저항이 완강했기 때문이다. 미국-스페인 전쟁 승리(1898년)로 필리핀을 넘겨받았지만 스페인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모로족 원주민은 복종을 거부하고 나섰다.
전투의 주요 무대는 밀림. 모로족 전사들은 울창한 밀림에 숨어 칼과 창, 활로 미군을 공격했다. 미군은 자연스럽게 권총을 주요 무기로 삼았다. 근접전 또는 백병전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총의 위력이 통하지 않았다는 점. 당시 미군의 제식 권총이던 38구경 롱 콜트 리볼버가 발사한 탄알을 복부나 대퇴부에 3~4발씩 맞고도 원주민들은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간신히 승리한 후 미군은 보다 강력한 권총을 찾았다. 마침 오스트리아의 루거가 회전식 리볼버가 아닌 탄창식 반자동 권총을 개발했던 터. 반자동에 강력한 위력이 있어야 한다는 미군의 요구는 콜트 45구경 반자동 권총을 탄생시켰다.
‘손 대포’로 불리는 콜트 45구경은 요즘도 한국군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군도 80년대 초반까지 이 권총을 사용했다.
콜트 45구경을 대체한 총기는 이탈리아 베레타사의 M92F. 미군이 M-9이란 제식 명으로 베레타를 채용한 이후 세계 권총의 대세는 45구경에서 9mm로 바뀌었다.
45구경 탄환보다는 위력이 약하지만 9mm는 탄창의 장탄 수가 많고 총의 반동도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이 장점.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에서 사용된 두 자루 권총 중의 하나인 글록 19가 바로 9mm급 권총이다.

<장면 2>
1979년 10월 25일 밤 서울 궁정동.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저녁 겸 술자리를 갖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미리 감춰둔 권총을 뽑아 배석한 차지철 경호실장에서 제1발을 발사했다.
제2발이 향한 곳은 박 대통령. 김재규가 총을 겨눴을 때 손바닥으로 제지했던 차지철은 이 순간 화장실로 도망쳤다. 김재규가 박 대통령에게 제3발을 발사한 순간,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격발 불량.
당황한 김재규는 방 바깥으로 나가 부하의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받아 만찬장으로 들어와 차지철과 박 대통령에게 총알을 안겼다. 이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최초의 총격을 받았던 차지철 경호실장의 부상이 '손 바닥 관통상'이었다는 점.
저녁상을 마주한 거리에서 발사했지만 치명상을 주지 못한 김재규의 권총은 독일제 발터 32구경 반자동 권총. 영화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사용한 바로 그 총이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에서 사용된 두 자루 권총 중 하나인 발터 22구경 권총과 제작사가 같다. 차이는 김재규의 32구경이 22구경보다 위력이 강하다는 정도다.

<장면 3>
1998년 1월 11일 충청남도 천안 목천면 태화산 기슭. 사복 형사 두 명이 신창원을 덮쳤다. 신창원은 이미 두 차례나 경찰에 걸려 가스총을 맞고도 격투 끝에 도주해 경찰이 검거에 총력을 다했던 탈옥수. 형사들에게 실탄이 장전된 권총이 지급된 것도 검거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창원에 대한 3차 검거 시도에서 권총이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는 점. 형사 한 명과 신창원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동안 최 모 경장이 신창원에게 총을 발사했지만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격발 불량 탓이다.
이번에는 김 모 경사가 자신의 권총을 뽑아 신창원의 다리를 노려 4발을 쐈지만 단 한발도 맞추지 못했다. 신창원은 결국 또 다시 도망치고 두 형사는 정직 3개월씩을 먹었다. 권총 두 자루가 범인 하나를 잡지 못한 것이다.
형사 두 명이 사용했던 권총은 국산 22구경 권총. 최대 장탄 수가 10발인 권총의 탄창에 두 형사들은 4발만 끼어 넣었다. 10발을 모두 삽탄하면 스프링이 탄알을 약실에 밀어주지 못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총은 버지니아 공대 사건에서 사용된 총의 하나와 구경과 위력이 똑 같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둘러싼 음모설
권총이 사용된 위의 세 가지 장면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권총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점. ‘여성용 액세서리’로도 불리는 22구경보다 강한 32구경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을 상 건너 거리에서 맞고도 손바닥 관통상을 입은 게 바로 그것이다.
두 번째는 반자동 권총의 격발 불량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탄창에 총알을 많이 넣으면 넣을수록 송탄 불량의 확률도 높아진다.
군에서도 소총을 사격할 때 탄창의 최대 용량인 30발을 다 채우는 경우가 드문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에 격투중이라고는 해도 바로 앞에서 발사한 4발이 다 빗나갈 만큼 명중률이 낮다는 것
역시 권총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을 둘러싸고 음모론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45구경보다는 반동이 적지만 한 손으로 쏘기에는 무리라는 9mm 권총과 간신히 호신용 정도인 22구경 권총 두 자루로 5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거나 다치게 하려면 고도로 훈련 받은 킬러나 가능하다는 의문이 음모론의 골자다.
음모론과 관계없이 한정된 시간에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했다는 자체가 신기록에 해당된다.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 이전까지 최악의 학원 내 총기 사고라는 1999년의 콜롬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에서도 2명이 900여발의 총탄을 발사했는데, 사망자는 13명이었다. 월남전에서는 탄환 10만발 당 사망자 1인이라는 추정도 있다.
어떻게 전문 킬러도, 첩보원도 아닌 용의자 조승희씨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살상할 수 있었을까.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음모론의 연장선이다. 조씨가 자살한 사람으로는 보기 어렵게 복부와 두부 등에 3발의 총상을 입었으며, 특히 두부 총상의 위치가 머리 뒤쪽이라는 점 등 음모론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정황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권총의 성능이 상상 이상으로 발전했다는 가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메커니즘이 달라진 게 없지만 성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상반된 견해 중 어느 게 맞을까. 시간이 규명해 줄 문제지만 후자가 보다 ‘과학적’이다. 추측의 수준을 떠나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글록 19 권총과 발터 22구경
조씨의 주 무장인 글록 19 권총은 오스트리아 슈타이어사가 생산하는 글록 시리즈의 일종. 단순한 외형과 함께 ‘프라스틱 총’으로 유명하다. 글록은 유명 메이커가 즐비한 총기 시장에서 신생업체가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도 손꼽힌다.
글록의 창립은 1963년. 가스톤 글록이라는 엔지니어가 회사를 만들어 1980년까지 대검과 삽, 훈련용 수류탄 등 간단한 군용 소모품을 제작하다 오스트리아군의 신형 권총 채용 공모에 응해
권총 개발에 나섰다. 당시 오스트리아군의 요구 사항은 간단하고 단순하며 확실한 안전장치, 장탄 수 증가와 경량화.
총기 제작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던 글록사는 이런 기준을 모조리 충족시키는 명품을 선보였다. 모래와 진흙탕, 고온과 저온 등 극한 환경에서의 사격을 포함한 1982년 오스트리아군의 혹독한 평가시험에서 글록은 다른 출품작보다 뛰어난 성능을 발휘해 군용 권총으로 채용됐다.
글록의 성공은 오스트리아군과 경찰에 대한 납품으로 끝나지 않았다. 저렴하고 뛰어난 성능, 콜트 45구경의 두 배를 넘는 17발의 장탄 수 등 장점이 알려지면서 서방국가 경찰들은 글록을 ‘끝내주는 9mm(wonder-nine)’라고 부르며 찾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외부로 돌출된 공이치기가 없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혔다. 주머니나 홀스터(권총 집)에서 총을 꺼낼 때 거추장스러운 부위를 없애버린 단순함으로 글록은 미국 경찰의 60%가 사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조씨의 범행에 사용된 글록 19는 경량화 모델. 콜트 45구경보다 절반 이상 가벼워졌다. 장탄 수가 15발로 줄어들었을 뿐이지만 30발들이 연장형 탄창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범용성과 호환성도 갖춘 모델이다.
시리즈의 생산량 누계는 250만정 이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글록을 인수한 슈타이어사는 망하기 직전의 대우가 인수할 뻔 했던 업체이니 만큼 한국과 이래저래 악연이 많은 셈이다.
부 무장인 발터 22구경은 독일 발터사의 최신형 모델이지만 장탄 수(10발)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총탄의 위력도 ‘맞아야 찰과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약한 편이다.
원래 가벼운 모델인데다 글록 시리즈를 본 따 프레임을 프라스틱으로 만들어 더욱 가벼워졌다. 글록 19와 달리 한 손으로도 사격이 가능하다. 조씨가 50여발을 구입했다는 발터 22구경의 탄알이 얼마나 많이 사용됐는지도 사건의 전모를 가릴 열쇠로 보인다.
글록 19권총에서 발사된 탄알보다 훨씬 적은 분량이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사건이 오히려 총기 판매 증가 유인
총기가 부른 사고임에도 이번 사건은 총기 판매 증가라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특히 범행에 사용된 글록과 발터 시리즈의 인기까지 높아지고 있다. 걸핏하면 격발 불량에 명중률도 떨어진다는 권총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뛰어넘을 만큼 신뢰성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 발전의 그림자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확해지고 고장도 나지 않는 권총을 만들기 위한 기술 개발과 개량의 결과가 인간에게 해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사고로 다시금 확인됐다.
무기 자체가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지만 사용되지 않는 한 안전을 담보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오늘날도 무기 개발에는 무수한 인력이 매달리고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권총의 성능은 1902년 미군이 보다 위력이 강한 권총을 원했을 당시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이번 사고로 증명됐다.
현대 무기의 위력은 치명적이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은 인간의 통제와 제어 범위를 벗어난 무기와 기술이 몰고 올 미래 재앙에 대한 경고장일지도 모른다.
권홍우 서울경제신문 편집위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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