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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축제 가보니] "저는 세상에 성소수자가 저만 있는줄 알았어요"

군형법·낙태죄·동성혼 다양한 의제 나오고

기업·인권위·대사관 단위에서도 참여

광장 반대편에선 기독교 단체 반대집회

국내 최대 성소수자 행사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진행된 14일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다양한 차림으로 무대 공연을 즐기고 있다./오지현기자




“구경하고 가세요. 무지개 스티커 드립니다!”

체감기온 섭씨 33도.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서울광장을 찾은 성(性)소수자와 시민들은 긴 줄을 마다 않고 다양한 부스 행사를 체험했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는 뱃지, 책, 티셔츠 같은 물품을 판매하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모두 연신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본격적인 공연과 퍼레이드가 시작되기 전임에도 길을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의 인파와 취재진이 몰렸지만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은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를 활용한 아이템과 의상을 뽐내며 행사를 즐기는 모양새였다. 강명진 조직위원장은 “지난해 집회 측 추산 8만여 명이 참가했다”면서 “올해는 그 열기가 더 뜨거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최대 성소수자 행사인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가 막을 연 14일 오전, 서울경제신문은 축제가 진행 중인 서울광장을 찾아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민단체, 러쉬·구글 같은 기업, 미국·영국·프랑스 등 대사관에서도 부스를 내고 퀴어축제에 공식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이 퀴어축제에 들고 나온 의제는 단순히 성소수자 인권에 국한되지 않았다. ‘한국여성민우회’ 윤소 활동가는 “낙태죄 폐지는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퀴어도 함께 낙태죄 폐지를 외칠 수 있다”라면서 낙태죄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했다. ‘전쟁없는세상’ 상근 활동가 이용섭씨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중에서도 성소수자가 많다”면서 “대체복무제 도입과 함께 성소수자에게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한국 군대의 문화가 개혁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가 “성소수자 혐오를 멈추고 회개하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오지현기자


각종 성소수자 단체에서도 퀴어축제에 참여해 목소리를 냈다. 전국 대학생 성소수자 모임 연대체인 ‘QUV’의 도터 활동가는 “3년째 축제에 참가 중인데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라면서 “혐오세력의 목소리가 훨씬 크고 압도적이었는데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공감해주시는 시민분들이 늘어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프리허그’ 행사가 진행된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하다. 우리 애들을 혐오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제도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서채완 변호사는 “민변 소수자인권위에서 성별정체성 관련 공익소송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한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소속 김광민씨는 “소수자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어 있는 나라가 아니라 다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장이 없다”라며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즐거움이 가능한 특별한 날”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대만은 동성혼이 법제화될 예정이고 일본 또한 지자체 단위에서 동성 파트너를 인정하는 조례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한국 인권운동은 아시아에서도 역사가 깊은 편인데 소수자 인권만 답보상태”라고 지적했다.



국가기관으로서는 지난해에 이어 최초로 퀴어축제에 공식 참여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지지 의사를 밝히고 인권위로 많은 항의 전화가 왔으나 인권위는 동성애나 동성애자를 지지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은 그들의 인권을 지지한다”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지난 12일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맞이하여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과 혐오 표현을 개선하기 위한 인권시민사회단체에 대해 지지와 연대의 의미”라면서 인권위 건물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내걸기도 했다.

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 공식 참여한 국가인권위원회 행사부스에서 한 성소수자 시민이 “당당하게 연애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오지현기자


성소수자를 비롯한 시민들도 축제를 즐겼다. “세상에 성소수자가 저밖에 없는 줄 알았다”는 봉자(가명·19)씨는 친구 나봉(가명·19)씨와 함께 대학생이 되자마자 퀴어축제를 찾았다. 이들은 “주변에서는 동성애 등 성소수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축제에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니까 동질감이 든다”면서 “대한민국에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가 있구나. 나만 혼자인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라프라스(가명·25)씨는 “외국인 성소수자를 포함해 평소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잘 없는데 내년에도 꼭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알렉스씨는 “저 스스로도 성소수자이고 학문적으로도 관심이 많아 퀴어축제에 참가했다”면서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종교 단체에서 반대 집회를 여는 것을 보면 의문이 든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날 서울광장 반대편에서는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들의 집회가 축제와 동시에 진행됐다. 경찰은 100개 중대(약 1만명)를 동원해 돌발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앞선 13일에는 “동성애 축제를 반대한다”는 청원이 21만 명이 넘는 사람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가 “서울광장 사용 여부는 청와대가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퀴어축제에서는 오후 4시 반부터 종각역과 명동역을 돌아 3.7km를 행진하는 퍼레이드와 축하무대가 이어진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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