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면전을 끝냈다는 낙관론에 뉴욕 증시가 급등했다. 미국과 중국의 스위스 무역 합의는 탐색전 수준이 될 것이란 기존 시장의 전망을 깨고 두 나라가 115%포인트의 관세율 인하를 발표하면서 투자자들의 위험 선호 심리가 불붙었다. 시장에서는 금과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을 팔아 주식을 사려는 움직임이 뚜렷했다. 시장의 공포지수라고 불리는 변동성지수(VIX) 지수는 전 거래일 29.1에서 이날 18.39까지 떨어져 지난 3월 27일 이후 처음으로 20 아래로 내려왔다.
12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160.72포인트(+2.81%) 오른 4만2410.10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184.28포인트(+3.26%) 상승한 5844.19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779.43포인트(+4.35%) 급등한 1만8708.34에 장을 마감했다. KKM파이낸셜의 제프 킬버그는 “투자자들이 중국 무역 관세 협상 진전 속도에 놀랐기 때문에 시장이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시장의 낙관론이 확산되면서 일부 지수는 공식적인 상승장(bull-market) 영역에 진입했다. 나스닥시장에 상장된 비금융 대형 100개 기업을 나타내는 나스닥100지수는 이날 2만868.15를 기록해 4월 8일 저점(1만7090.4) 대비 22.1% 상승했다. 기술적으로 지수가 저점 대비 20% 상승하면 불마켓으로 판단한다. 다만 나스닥100지수는 최근의 상승세에도 2월초 고점이었던 2만2000선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업종에서 상승세를 보였다. 미중 분쟁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던 소매점 타겟은 4.85% 올랐으며 아마존은 8.07% 올랐다. 나이키 주가는 7.36% 급등했으며 애플은 6.31% 상승했다. 반도체 주도 급등하면서 엔비디아가 5.44% 오른 것을 AMD가 5.13%, 슈퍼마이크로컴퓨터가 4.78%올랐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8.5bp(1bp=0.01%포인트) 급등한 4.474%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이날 국채 매도세는 위험자산 선호 심리에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마찬가지로 금 가격도 하락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금 연속선물 가격은 온스당 3241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3.06% 급감했다.
트럼프 대통령 “전면적 관계 재설정…주말 시진핑과 통화할 수도”
시장의 랠리는 미·중 무역협상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속도와 폭으로 진전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날 10~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한 무역 회담의 결과로 서로 관세율을 115%포인트 씩 낮추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은 우선 125%이던 대(對) 중국 관세율을 애초 4월 2일 수준인 34%로 되돌리기로 했고, 이 가운데 24%는 9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 펜타닐 관세 20%는 유지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對) 중국 관세는 협상 전 145%에서 앞으로 90일 동안 30%로 낮아진다. 중국은 미국에 부과하던 125%의 관세를 10%로 낮춘다.
LPL 파이낸셜의 제프 부흐빈더는 “아무도 중국 관세율이 이렇게 낮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고 이는 매우 긍정적인 서프라이즈”라며 “(90일의) 일시 인하가 끝나면 다시 관세가 인상될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은 안심이 된다”고 이날 증시의 랠리를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협상도 호조를 보일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북돋웠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에 대해 “관계의 전면적인 재설정(total reset)”이라고 평가하면서 “중국이 모든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기로 동의했으며, 이는 협상의 가장 중요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 개방과 관련한 중국과의 합의는 문서 작업 만이 남은 상태며 추가 협상 전반에 대해서도 “이번 주말 시진핑 주석과 통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중국 합의에도 여전히 100만에 최고 관세…모건스탠리 “지속가능한 증시 상승 단계 아냐”
이날 증시의 환호는 산업계의 반응과는 다소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무역협상이 일종의 숨 쉴 여지가 생긴 것일 뿐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반응이다. 중국과의 무역이 ‘교역 중단’ 수준에서 ‘감소’로 줄어들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관세율이 여전히 30%로 높고, 이 마저 오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과 중국 외 나머지 국가와의 관세율 협상은 여전히 안개속 이다. 무디스애널리틱스는 최근 영국과의 협정, 중국과의 제네바 협상 결과를 반영하면 미국의 실효관세율이 직전 21.3%에서 13.7%로 낮아졌다고 추산했다. 다만 이는 여전히 191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대(對)미국의류신발협회(AAFA)의 스티브 래마 회장은 “지금 필요한 것은 중국과의 일시적 협상이 아니라 모든 무역 상대국과의 장기 협상 타결”이라며 “그런 환경이 조성돼야 기업들은 장기 무역과 투자, 공급망 재배치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별 기업의 리스크도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폰의 80% 이상을 중국에서 생산하는 애플의 경우 30%의 관세를 적용하더라도 이익률을 줄이거나 비용 증가를 판매 가격에 전가해 아이폰 가격을 올리는 선택에 몰려있다. 전자의 경우 기업의 실적 악화, 후자의 경우 미국 물가 상승 우려를 높일 수 있는 선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와 관련 “애플은 아이폰 가격을 인상하는 쪽을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이미 고가인 아이폰 가격이 오르면 애플의 다음 아이폰 생산 주기가 지연되거나 더 많은 고객이 저가 모델로 전환할 수 있다”며 장기적인 애플의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을 우려했다.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는 중국과의 합의가 미국 경제의 향방을 바꾸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행사에서 “무역 정책은 계속해서 나아가고 이날 아침에 일어난 일(미·중 무역 합의)처럼 계속해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관세가 이번에 발표된 수준과 가깝게 계속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무역 정책은 여전히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글러 이사는 중국에 대한 관세가 낮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지난 수십년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연 초와 비교해 관세율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률 둔화를 포함한 경제 여파가 마찬가지로 계속되다는 것인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증시가 상승세로 전환했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는 월가의 경고도 이어졌다. 마이클 윌슨이 이끄는 모건스탠리의 전략가 팀은 시장의 지속적인 상승을 위한 조건이 아직 모두 충족되지 못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모건스탠리는 지속가능한 증시 호조의 조건으로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낙과적 전망 △기업 수익의 안정적인 조정 △연준의 금리 인하 신호 △침체 신호가 없는 상태에서 4% 미만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을 꼽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이 가운데 앞선 2가지 조건은 충족됐지만 여전히 나머지 두 가지 항목, 즉 비둘기파 연준과 10% 국채 금리 하락은 실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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