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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우리'를 향한 과잉 공감 '타인'을 향한 칼이 된다

■헤이트

최인철 외 지음, 마로니에북스 펴냄

내가 속한 집단만이 옳다는 믿음

혐오 정당화하고 더 큰 충돌 불러

다르다는 이유로 비하·폭력도 반복

우월 vs 열등·선진국 vs 후진국 등

모호한 잣대의 갈라치기 벗어나야

지난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종 차별적 혐오 범죄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AP연합뉴스




혐오는 글자 그대로 ‘싫어하고(嫌) 미워한다(惡)’는 뜻이다. 하지만 단순한 싫음과 미움이 아니다. 혐오에는 불쾌함, 역겨움 등의 감정이 뒤섞여 있다. 매우 강도 높은 부정적 감정이다. 이 독한 감정이 언제부턴가 우리 일상에 너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버렸다.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혐오스럽다”는 말을 툭 내뱉곤 한다. 혐오의 대상도 광범위해지고 있다. 성별, 종교, 나이, 출신 지역, 인종, 성적 지향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모욕·비하하고, 때로는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악의 경우 누군가가 목숨을 잃는 비극까지 발생한다. 혐오는 어쩌다가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됐을까. 왜 인간은 쉽게 혐오라는 감정에 지배 당하는 것일까.

혐오가 지금보다 더 확산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 나쁜 사회가 될 것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렇다면 혐오가 더 자라나기 전에 누군가 이를 막아서야 한다. 원인을 찾고 현재를 진단하여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에 티앤씨재단의 주도 하에 아홉 명의 학자가 나섰다. 심리학, 법학, 언론학, 역사학, 철학, 인류학 등을 전공한 학자들이 혐오 문제를 공론화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혐오가 생겨나는 이유와 과정을 분석하고, 과거의 사례를 바탕으로 혐오를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지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의 진지하고 치열했던 연구와 논의의 결과물이 바로 신간 ‘헤이트 :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다.

책은 혐오가 비뚤어진 일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루시퍼 효과’, 즉, 평범한 사람도 특정한 상황에 놓이면 사탄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혐오는 아이러니하게도 공감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감정이다. 공감이 비뚤어지는 순간 혐오가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감은 선하고 좋은 것이라 여겨지지만,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순간 극렬한 차별과 배제가 발생한다. ‘내’가 속한 집단이 선하고, 우수하고, 옳다고 믿을 수록 다른 집단은 악하고, 열등하고, 틀렸다고 생각하기 쉽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 자신에 대한 사랑, 내집단(in group)에 대한 애착이 오작동해서 안 좋은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 혐오일 수 있다”며 “우리 집단 만을 위한 공감의 과잉은 혐오를 정당화하고 더 큰 혐오를 만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공감하는 마음이 없더라도 다른 사람을 돕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행동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를 갖춰 놓는 게 효과적”이라고 제안한다.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대항 표현’도 주목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은 혐오의 온상지다. 소수의 막말이 여과없이 확산되고, 소수의 목소리만 크게 들리는 침묵의 나선 이론이 감정 전염을 자극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을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김 교수는 혐오 표현의 부당함을 드러내고 맞받아치는 대항 표현이 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나 공직자처럼 영향력이 큰 기관이나 인물이 대항 표현의 발화자로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홀로코스트, 이슬람포비아, 아프리카 인종주의와 민족 갈등, 마녀사냥 등 가슴 아픈 역사로 남은 집단 혐오의 사례도 들려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아연실색할 일이지만 사건 당시엔 집단 광기가 어불성설을 너무나 쉽게 합리화했다.

혐오의 감정은 코로나 19 이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혐오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개선할 적기라고 책은 강조한다. 지금 각 공동체는 위기의 원인을 억지로 특정 집단에서 찾으려 하다가 혐오에 빠져들고 있다. 이 혐오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공동체에 대한 비뚤어진 공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책은 또한 우리 모두가 주류인 동시에 비주류 임을 기억하라고 호소한다. 서양 근대 문명이 만들어낸 각종 이분법도 떨쳐내라고 제언한다. 우월함과 열등함, 선진국 대 후진국 등 모호한 잣대 아래 갈라치기하는 사고 방식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라고 말한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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