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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인재대국] 1. 불꺼진 대덕단지, 사라지는 연구소

국가 장래를 이끌어갈 「골드칼라」가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지식산업 육성을 주창하고 있으나 정작 숙련된 고급두뇌들은 보금자리를 상실, 방황하고 있다. 국가의 기술경쟁력과 21세기 활로개척을 위해서는 새로운 고급인력의 창출도 중요하지만 사장되고 있는 기존 고급두뇌 집단의 활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구조조정, 지식산업 육성, 신지식인 양성 등은 모두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은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당장의 과실을 얻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능력있는 연구인력들은 기회가 닿는 대로 안정된 신분과 높은 보수를 찾아 그들의 보금자리인 연구소를 떠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축적시켜온 기반기술과 국가기밀이 보금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이들과 함께 경쟁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국가 최고의 고급 연구인력 메카인 대전의 대덕연구단지를 찾아 흔들리고 있는 「골드칼라」들의 실상과 지식산업의 미래를 시리즈로 조망한다.【편집자 주】 「국가 기반기술의 심장부, 두뇌집단의 메카인 대덕단지가 흔들리고 있다.」 한때 자정이 넘도록 미지의 영역을 찾아 탐구의 불꽃을 밝히던 이곳 연구원들은 이제 저녁6시만 되면 너나할 것 없이 퇴근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총총히 연구실을 빠져나간다. 국가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과 열정보다 자신들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연구원 신분은 보장받을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짙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연구경력 5년차 미만의 능력있는 젊은 연구원들을 이곳에서는 「장전된 총탄」이라고 부릅니다.』 국책연구소에 근무하는 K박사(41)는 『불투명한 신분, 단기적인 성과만을 채근하는 연구풍토에 짓눌린 젊은 연구원일수록 외국기업이나 대학 등에서 눈길만 한번 보내도 곧바로 「총알」같이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덕에서 진행되는 상황만 보면 구조조정이 뭔지 모르겠다』며 『국가 및 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진행되는 구조조정이 오히려 기반기술 와해나 고급정보의 경쟁국 유출을 촉발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덕연구단지에서 활약하는 석·박사급 연구인력은 지난해초 8,382명에서 1년새 7,914명으로 줄었다. 「20명당 1명」꼴인 468명의 핵심인력들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구현장을 떠났다. ★그림참조 대덕연구단지를 떠난 연구원들 중 일부는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벤처기업을 설립하거나 대학으로 진출했지만 상당수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여전히 이리저리 부유(浮遊)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민간 기술연구소에 근무하던 J씨(37·토목학 박사). 그는 최근 연구원이라는 신분과 박사학위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외국계 보험회사의 생활설계사로 자리를 옮겼다. J씨와 가까운 한 연구원은 『박사학위 소지자일수록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며 『불투명한 미래와 낮은 보수, 같이 근무하던 연구원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자·무능력자로 전락하는 모습 등을 바라보며 이직을 결심했을 것』이라고 씁쓰레했다. 또다른 민간 연구소에서 활약하던 K씨(45·미 일리노이대 무기재료학 박사)는 자신의 전공과는 동떨어진 무역업체를 차려 나갔다. 국책연구소 통신부문에서 연구활동을 하던 L씨(42·전자공학 석사)는 현재 모 벤처기업의 임원. 하지만 이름만 걸어놓았을 뿐 실제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방황하고 있다. 연구원의 신분불안은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기반기술 현황 및 노하우를 고스란히 경쟁국에게 넘겨주는 사태까지 빚는다. 전자통신연구소(ETRI)에 근무하다 최근 미국의 루슨트테크놀로지스 본사로 이직한 H씨(35·KAIST 통신공학 박사). 광통신 부문에서 상당한 연구경력을 쌓아왔던 H박사는 루슨트테크놀로지스로 자리를 옮기면서 같은 팀에 있던 박사급 인력 두명을 함께 데리고 갔다. ETRI의 한 연구원은 『루슨트테크놀로지스는 그동안 ETRI와 광통신 부문에서 각축을 벌여왔다』며 『세계적인 기술력을 이미 축적하고 있는 이 회사가 국내 연구인력을 스카우트한 것은 한국의 광통신 기술 수준을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는 기술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덕분에 ETRI의 광통신 분야 연구는 사실상 와해됐으며 기술력의 격차도 세계수준과 크게 벌어졌다』며 『내부재원을 조성해 광통신 분야에 다시 투자하고 있지만 지난 몇년간 다져온 노하우를 재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전략적 차원에서 중장기적으로 가꿔오던 연구팀이나 연구소 전체가 한꺼번에 붕괴되기도 한다. 막대한 자금과 오랜 기간을 투입해 축적시킨 기반기술과 노하우도 동시에 사장되고 있다. 대덕단지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쌍용그룹의 쌍용중앙연구소가 대표적인 사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직전까지도 120여명의 연구인력이 모여 각종 기반기술과 응용기술 분야의 노하우를 축적해오던 이곳은 현재 절반 가량인 70여명의 연구인력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쌍용연구소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수술용 칼, 자동차용 엔진 소재 등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뉴세라믹스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특히 지난 86년 설립된 신소재연구팀은 10여년 동안 총 700억~1,000억원을 투입해 고순도 정제기술 등 해당분야의 특허만도 250여건을 획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뉴세라믹스를 포함한 신소재연구팀이 완전히 해체돼 그동안 애써 가꿔온 고급 연구인력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관련 노하우도 공중으로 사라졌다. 최용은(崔容銀) 쌍용중앙연구소 연구관리실 과장은 『전자부품 재료분야나 기계부품 등 구조재료 분야, 기능성 재료분야의 시장이 갈수록 커질 것은 알지만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히고 『신소재연구팀이 보유하고 있던 대부분의 장비는 헐값에 처분했으며 지금은 그동안 획득했던 특허권을 매각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며 한숨지었다. 대덕단지의 한효과학기술원은 연구소 자체를 폐쇄, 관리자만 상주시킨 채 매입대상을 물색하고 있으며 연구소 설립작업을 진행시키던 한솔기술원 등은 투자계획을 무기 연기한 상태다. 이한구(李漢久) 대우경제연구소장은 『대덕단지의 현실은 IMF체제 이후 한국이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며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5~10년 후 한국의 기술경쟁력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으며 기술의 대외종속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대덕단지로 표현되는 고급 연구인력들이 안심하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때 21세기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마련된다』며 『연구비 감축이나 연구인력 감원과 같은 양적인 구조조정에서 탈피, 연구시스템 개선 등을 통해 보다 양질의 연구성과를 맺을 수 있는 질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김형기 기자 KKIM@ 김상연 기자 DREAM@ 박희윤 기자 HY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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