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중심가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은 지난 13일 성난 시민들이 몰려들어 난장판이 됐다. 시민 시위대는 매장의 불을 끄고 손님들을 내쫓은 후 창문에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커피"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내걸었다. 스타벅스에 대한 반감 표출은 중동지역을 넘어설 조짐이다. 앞서 10일에는 영국 런던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스타벅스 매장을 점거, 집기를 파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분쟁이 주요 국제뉴스로 다뤄지는 요즘, 중동 각지에서는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한창이다. 불매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의 주장은 스타벅스에서 나온 돈이 이스라엘 군부로 흘러 들어가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것. 유대인인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강경한 시온주의(팔레스타인의 시온에 유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념)자로, 지난해 초 시애틀 주미유대인 모임에 참석해 "팔레스타인인들이 테러를 계속하고 있다"며 팔레스타인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지난 1998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공로상을 받을 만큼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돈독히 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친이스라엘 기업으로 꼽히는 것은 스타벅스 뿐만이 아니다. 반유대주의자들의 불매운동 리스트에는 AOL타임워너, 디즈니, 에스티로더, 노키아, IBM 등 유수의 기업들이 대거 포함돼있다. 이들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은 중동지역뿐만 아니라 무슬림 인구가 많은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유럽 국가로도 퍼져가고 있다. 불매운동 참가자들은 이들 기업이 유대인들의 편견에 기초한 일방적 주장을 미국의 정책에 반영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더 나아가 유대인의 자본력을 등에 업은 유대계 정치인들이 워싱턴의 정치에 대거 참가하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대인들이 돈만 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인물들 중에도 유대인이 많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 벤 버냉키 현 FRB의장, 폴 울포위츠 전 세계은행 총재, 로버트 졸릭 현 세계은행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미국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 월가의 투자귀재 조지 소로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폴 크루그먼 컬럼비아대 교수…. 한번 늘어놓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정도다. 희대의 사기극으로 아직도 미국 언론매체의 조명을 받고 있는 버나드 매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도 유대인이다. 20일(현지시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 중에도 유대인들이 많다. 티모시 가이스너 차기 재무장관과 로렌스 서머스 차기 국가경제위원장이 유대인이다.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도 유대인으로, 특히 그의 부친인 벤저민 이매뉴얼은 이스라엘 건국운동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아들 램 이매뉴얼이 미국의 대(對) 이스라엘 정책에 기여할 것이라는 식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는 유대인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에 매우 우호적인 인물이다. 미국 내 유대계 언론들은 "오바마 내각 중심부가 유대인들로 채워졌다"고 환호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주로 미국 내 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한다. AIPAC은 '이스라엘의 번영과 미국-이스라엘 관계 강화'를 설립 목적으로 내세운다. 크고 작은 미국 내 유대계 공동체 및 시민단체의 의견을 단일화, 공식화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IPAC을 구심점으로 한 유대계의 로비 형태는 미 최대 로비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 등 여타 로비단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개인의 투표나 기부금 등이 주요 수단이다. 다만 그 규모는 남다르다. 워싱턴포스트는 AIPAC이 미 의회에 투입한 로비스트만 1,000명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AIPAC도 "미국의 모든 상하원 의원을 찾아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해 설명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대계 기부금 규모 역시 미국 내 여타 이익단체에 비해 막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지난 1999년부터 2008년 사이 유대계 기부금이 공화당 전체 기부금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높아져 왔다. '유대인의 파워'라는 저서로 유명한 유대계 신문 편집장 J. 골드버그는 유대계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6년에 민주당 60%, 공화당 35%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 워싱턴포스트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지난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유대인 한 명이 AIPAC에 기부한 금액은 평균 5,000만~6,000만 달러 수준인 반면, 아랍인 한 명이 같은 기간 동안 친 아랍계 단체에 기부한 금액은 60만 달러에 그친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미셸 바드는 "유대인들의 정치 기부금 규모가 미국 전체 기부금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 같은 유대인들의 '공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국의 이스라엘 및 중동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겉으로 나타난 '결과'만을 보고 추측해볼 따름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매년 30억 달러 규모의 군사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전체 해외 군사원조 중 약 절반에 해당한다. 물론 유대인들이 무조건 이스라엘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에 거주하는 일부 유대인들은 지난달 11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은 극단주의와 지역 불안정, 정치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며 휴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부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더 평화적인 팔레스타인정책을 펼치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의 유대인들이 현재의 이스라엘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로비 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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