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네티즌이 두명 가운데 한명 꼴로 이용하고 있다는 검색엔진 구글. 이곳 사이버 공간에선 높낮이란 게 없다.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느냐 없느냐 기준으로만 사람을 차별할 뿐. 담배 한가치 크기 보다 작은 네모난 검색창에 원하는 정보를 쳐 넣는 순간 구글은 고객이 원하는 바로 그 정보를 즉시 대령한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자판을 두들기는 사람의 정체를 따지지 않는 구글은 자기 주인의 인종, 나이,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알라딘의 램프요정 ‘지니’를 닮았다.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면 캄보디아에 사는 소년이든 대학 교수든, 또는 이 검색 엔진을 운영하는 나 같은 사람이든, 누구나 똑같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검색엔진은 모든 사람들 평등하게 만듭니다.” 컬럼버스의 대항해로 전 세계가 둥글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확인된 지 500여년. 털끝만큼의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둥근 세상’은 더 이상 무결점의 절대 명제가 아니게 됐다. 구글과 같은 인터넷 검색 도구 덕택 만이 아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토머스 L. 프리드먼은 콜럼버스 시대 이후 둥근 모습으로 탄생한 ‘1.0’ 버전의 세계가 19세기 산업혁명기의 2.0 버전을 거쳐, 21세기 3.0버전에서는 완전 평면으로 탈바꿈했다고 주장한다. 지난 99년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로 세계적 저술가 대열에 올라선 프리드먼은 이번 신간에서는 21세기의 화두가 된 세계화란 주제를 도마에 올렸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가 ‘렉서스’로 상징되는 경제적 통합의 힘과 ‘올리브 나무’로 상징되는 민족주의와 주체성간의 긴장을 다뤘다면 이 책은 세 차례의 판형 변화를 거친 세계화의 결과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집필하던 1998년은 인터넷과 전자상거래가 막 걸음마를 하던 시기. “2000년을 전후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접어들었다…이를테면 (이 시대는) 세계화 3.0(Globalization 3.0)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이후 전 세계에 몰려온 변화의 물결을 보면서 그는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계화 1.0 시대에 변화의 동력은 국가였고 2.0시대에는 기업이었다면 3.0시대 변화의 주체이자 동력은 개인이다. 그리고 개인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협력하고 경쟁하게 된 이러한 변화야 말로 세계화 3.0시대의 특징이다. 개인이나 집단이 세계화를 해나가는 데 필요한 힘 역시 군사력이나 하드웨어가 아니라 광케이블을 통한 네트워크와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의 소프트웨어로, 이는 우리 모두를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는 2.0 버전을 지나면서 작아졌던 세계가 3.0 시대엔 더욱 오그라들었다고 말한다. 그 뿐만 아니다. 3.0 세계화 버전에선 전 세계인이 실시간으로 참여하고 있는 게임에 무대는 완전 평면이 됐다. 그렇다면 3.0시대의 세계는 어떻게 작아졌고 어떻게 평평해졌는가. 저자가 세계를 평평하게 하는 10가지 동력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와 윈도 출현 ▦넷스케이프 출시 ▦워크플로 소프트웨어 ▦오픈소싱 ▦아웃소싱 ▦오프쇼어링 ▦공급사슬 ▦인소싱 ▦인포밍 ▦상징적 의미의 스테로이드를 꼽았다. 3.0 버전의 세계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새 모드에 적응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좋은 자리의 비행기표를 끊으려고 공항에 1시간 30분정도 일찍 나와 전자항공 발매기를 찾는 자신도 그저 2.0 세대에 머물러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세계화 1.0시대에 티켓을 발급해 주는 직원이 있었다면 2.0 시대에는 티켓 발매기가 직원을 대체했고 세계화 3.0시대는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티켓 발매원이 되어야 한다. 시장 경제에서도 이 같은 훈계는 똑같이 적용된다. “평평한 세계에서 게임의 참여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재능은 창조적인 상상력이다. 이 평평한 세계에서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상상력과 올바른 동기가 있어야 한다.” 2.0 시대 세계가 한 계단 높은 곳에서 로우 킥을 날리는 특권 계층에 의해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될 수 밖에 없는 공간이었다면 3.0 시대는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 오로지 자신의 힘과 기량만으로 챔피언 벨트를 향해 싸우는 평평한 모래판이라는 얘기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퓰리처상을 세 번씩이나 차지한 저자의 걸출한 글쓰기 솜씨와 방대한 취재력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올해 나온 경제ㆍ경영 도서 가운데 최고의 책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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