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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새뮤얼슨 타계] 생물·기계공학에도 관심 '20세기 르네상스맨'

■ 국내 제자들이 말하는 새뮤얼슨 교수

국내에 폴 새뮤얼슨과 사제의 연을 맺는 학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1980년대 초 매사추세스공대(MIT) 강단에서 은퇴한 뒤 석좌교수로서 연구에만 정진해왔기 때문에 그의 제자 세대도 이제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하버드대나 프린스턴대ㆍ시카고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MIT에서 수학한 경제학자가 드문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MIT 경제학박사 1세대 격인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가 새뮤얼슨 교수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거의 유일한 제자로 꼽힌다. 1985~1989년 MIT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새뮤얼슨 교수에 대해 "MIT 경제학과를 만든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새뮤얼슨과 MIT 경제학과는 동의어나 마찬가지로 통했다"고 말했다. 1950년대 이후 미국 경제학회가 영국으로부터 경제학 학문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받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새뮤얼슨 교수는 MIT 경제학과를 키우며 MIT를 넘어 미국 전체의 경제학계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 교수는 "새뮤얼슨 교수는 경제학뿐 아니라 생물학ㆍ기계공학 등 다른 학문에도 관심이 높았다"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버금가는 20세기의 마지막 르네상스맨으로 미국 학계에서 평가 받았다"고 회고했다. 새뮤얼슨 교수는 생물학 분야에서 먹이사슬과 관련해 개체 수가 먹이 양에 비례해 한없이 늘거나 줄지 않고 일정한 균형관계에 있다는 이론을 담은 논문까지 발표했다. 기계공학에서도 열의 기원, 엔트로피 등에 관심을 쏟으며 열역학에 일가를 이루기도 했다. MIT 출신인 김태종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직접 수업을 듣지는 못했지만 소탈한 모습만큼은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80세를 넘긴 나이에도 직접 양 손에 책과 논문을 한보따리씩 들고 농구화를 신고 학교에 나와 책 속에 파묻혀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은 MIT 학생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다. 새뮤얼슨 교수는 MIT에 '오픈 도어 폴리시(open door policy)'라는 전통을 만들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제자가 웬만해서는 교수 방에 접근하기 힘들었던 1950~1960년대 당시에 새뮤얼슨 교수는 학생들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예약 없이 교수 연구실을 찾아 질문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새뮤얼슨 교수가 만든 이 같은 정책은 이후 MIT 모든 학과에 퍼지면서 MIT만의 열린 문화를 조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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