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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Commard)여! 동료(Collegue)이자 친구(Friend)여!

헐리우드의 멕시칸들이 뭉쳤다! 지난 2002년 베를린 영화제의 개막제로써 숱한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프리다`는 무엇보다 헐리우드의 금기인 `사회주의` 노선을 배경으로 한, 멕시코 여류 화가의 이야기이다. 여주인공 셀마 헤이엑에서 프로덕션 디자이너 필립 페르난데스, 미술감독 베르나르도 트루일도까지 대부분의 스텝들이 멕시칸들로 구성, 당시 멕시코의 풍경과 열기를 그대로 재현해내었다. 그리고, 멕시칸들에 의한 그들의 역사와 그들의 자부심, 프리다는 1925년 9월 17일, 버스와 전차의 충돌사건이라는 `대형사고`로 시작한다. 그녀는 병이 난 것이 아니라, 몸이 부서진 것이었다. 버스에 타고 있던 프리다는 충돌의 순간, 승객들의 손잡이로 있던 쇠파이프가 그녀의 몸을 관통했다. 짓이겨진 그녀의 오른 발과, 그녀의 질을 통하여 몸을 관통한 상처는 석고로 옴 몸을 기부스 한 셀마 헤이엑으로 우리의 눈길을 빼앗기 시작한다. 애니메이션으로 상징되는 그녀의 상처는 그녀로 하여금, 침대에 누운 채 머리맡의 거울을 통하여 그림을 그리는 프리다로 다시금 그녀의 고통을 나타낸다. 카메라는 연신 천장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 본다. 그녀의 원색 그림은 거울 속에서 울부짓고 있다. ”프리다, 너의 이 다음 너의 계획은?” 유태계 독일인 사진사였던 그녀의 아버지가 항상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프리다의 대답은 “집안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프리다는 몇 번의 수술을 통하여,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금 그림에의 열정을 가다듬는다. 몇 년 후, 프리다는 당대 최고의 화가 ` 디에고`를 찾아 간다. 그당시 디에코는 멕시코 벽화 운동의 기수로서 명성을 드날릴 때였다. 그는 당돌한 그녀에게서 `영감와 열정`을 발견한다. `Commrad, Collegue. Friend` 라고 되뇌이지만, `열정`은 `열정`을 부르는 법! 당시 이미 두 번의 이혼을 했지만, 여성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디에고는 프리다에게 청혼한다. 당시 21살의 연상이었던 그였음에도 프리다는 그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육체의 정조가 아닌, 마음과 영혼의 성실을 맹세하며`. 언젠가 프랑스의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했던, `까미유 끄로텔`. 그녀는 그녀의 스승이자, 동반자였던 로뎅을 만나면서 또 다시 파괴되고, 그녀의 영감은 로뎅을 통하여서만 평가되어졌다. 그러나, 디에고는 로댕과 달리, 결코 프리다의 영감을 도둑질하진 않았다. 단지 프리다 스스로가 디에고와의 결혼을 통하여 어느새 스스로의 그림을 `Time Killing`라고 표현할 뿐이었다. 프리다에 의하면, 디에고는 그녀의 `두번째 대형 사고`라고 일컬음에도 그의 아기를 유산할 때까진 몰랐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동생 크리스티나와 오랜 육체적 관계를 맺어 왔다는 알게 될 때까진 `그가 진정 그녀에게 어떠한 의미`인가를 몰랐다. 단지 많이 사랑하지만, 끊임없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그런 관계라고 느낄 뿐이었다. 미국에서의 디에고의 성공은 두번째 애니메이션으로 극대화되었지만, 그는 마침내 록펠러센터의 그림사건으로 사회주의 화가로서의 미국 자본주의와의 대립을 경험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요! 집으로!” 프리다의 설득으로 그는 또다시 멕시코로 돌아 오지만, 그의 그림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프리다는 어느새 지속적이고, 지난한 `자기싸움` 속에서의 고통을 `그림`으로 감내하고 있었다. 디에고와의 고통스런 절망과 `애증` 속에서 그녀는 점차 자기 스스로의 `고통스런 승리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히 흥미로운 반전이 `프리다`의 태양 속을 뚫고 나타났다. `트로츠키`. 그는 스탈린의 경쟁자임에도, 그의 독재를 비판, 결국 사회주의 망명자가 된다, 그는 디에고의 초청으로 멕시코로 오게 되고, 프리다의 정염에 자신의 육체적 정열을 불태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신의 쾌락을 자제한 체, 그의 아내와 함께 떠난다. 어느새 남겨진 프리다. 그러나, 디에고는 “당신은 그에게 마음을 주었군! 그러나, 나는 당신을 배반한 적이 없어!” 라고 외친다. 또다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는 프리다. 그녀의 그림은 프랑스 파리의 멕시코 여류화가로 전시되게 되고, 그녀는 당시 유명화가인, `피카소`와 `칸디스키`등과 교우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곧 자신 스스로가 파리에서 `이국적(exotic)`인 멕시코 여자로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그, 디에고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혼을 요구하는 디에고. 멕시코에 홀로 남겨진 프리다는 또다시 척추수술과 오른쪽 발가락을 절단하게 되는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림! 그림 뿐이었다. 침대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상처와 영감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때 프리다의 세번째 애니메이션은 그녀의 부서진 척추로 파괴되는 육신과 초현실적 직관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돌아온 디에고. 상호 존중을 맹세로 프리다와 디에고는 다시 결합한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파괴된 프리다가 할 수 있는 것은 디에고의 보살핌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 그녀가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아마 죽는 그 날이 될 것이다. 그녀는 얘기한다. “ 그날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돌아 오지 않기를!” 프리다는 마침내 그녀가 꿈에 바라지 않는 멕시코에서의 전시회를 침대에 누운 채, 디에고와 함께 한다. 헐리웃의 몇 안되는 히스패닉 스타인 셀마 헤이엑는 멕시코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로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를 연기했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분장상과 작곡상을 수상하기도 한 프리다는 `자그만 체구`와 `짙은 일자 눈썹` 그리고, `멕시칸식의 악세서리와 원색의 화려한 의상`으로 줄곧 사회관습을 파기하는 한 여성을 보여주었다. 강한 자의식과 뛰어난 화가를 사랑하는 여성, 프리다. 그리고, 그녀의 멕시코에 대한 사랑과 반미 사회주의 의식. 이 모든 것을 담아 내기에는 180분짜리 스크린이 좁기는 좁았을 것이다. 사실 다소 생경스럽기도 했지만, 안토니오 반젤라스나 애쉴리 쥬드 같은 헐리우드 배우의 입술에서 나온 `사회주의 노선`에 대한 그림을 담아낸 여성 감독 줄리 태이머의 노력이 돋보인다. 그녀에게 프리다는 2번째 감독 작품이지만, 벌써 3번째 작품이 기대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동지(Commnard), 동료(Collegue), 친구(Friend)`에서 `부부`가 된 프리다와 디에고. 많은 천재부부들과 달리 이 두사람은 `동료 화가(Fellow Artist)`가 되어, 서로의 마지막을 다한다. 헐리웃의 마이너(Minor)로서 힘껏 영화를 만들었을 멕시칸들 스스로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프리다는 또 다른 남녀간의 사랑을 제시한다. 특히 고통받는 아티스트 여성은 언제나 뛰어난 아티스트의 여자가 되어, 더욱 고통받고, 그녀들의 영감은 피폐해져 간다. 그러나, 프리다는 설령 스스로 디에고로 고통받았다 할지라도, 그녀는 그 고통으로 더욱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고, 디에고는 이를 인정해왔다. 디에고는 설령 바람둥이 혁명가이자, 화가였다 하더라도, 그녀의 천재성을 결코 질투하지도 빼앗아 가지도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마지막이자 처음이었던 1953년 멕시코 회고전에서 그는 사람들에 이렇게 말한다. “ 나의 동료 화가(My Fellow Artist), 프리다 칼로(Frida Kahlo)라고!”라고. Mocalie@Magicn.com <모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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