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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살생부에 산업 생태계 급속 붕괴 … 성장 엔진 꺼질 판

[재계 허리가 무너진다]

"다음 타깃 누가될지 몰라" 대상 거론 기업 전전긍긍… 고용·투자 활성화에 찬물

기업 미래 경쟁력 키우는 건강한 구조조정정책 필요


"이렇게까지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될 줄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대기업 중에서도 허리 부분을 차지하는 그룹들의 동시다발적인 구조조정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 대열에 합류할지 걱정이 된다"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제2·제3의 구조조정 타깃을 우려하는 재계의 분위기는 흉흉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50위권 기업 집단 중에서 부실 징후 기업 명단이 밑도 끝도 없이 떠돌고 있다"면서 "일부 채권단은 이런 명단을 마치 '살생부'처럼 휘두르며 기업을 압박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들 기업이 리딩그룹의 뒤를 받치며 고용과 투자 등 한국경제 성장에 적잖은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50위권 이하에서 허리 기업으로 부상할 기업조차 찾아보기 힘든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배상근 전경련 본부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세계적인 불황 여파가 허리 기업들에 본격적으로 미치고 있다"며 "허리가 있어야 리딩그룹도 있고 고른 성장이 된다는 점에서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허리 기업들=2013년 재계 9위인 한진그룹은 2008년 이후 재계 9~10위권을 꾸준히 유지해온 그룹이다. 그런 한진조차 얼마 전 항공기 매각 등을 통해 무려 5조5,000억원에 이르는 유동성 확보 방안을 발표했다. 그 뒤를 위어 재계 21위인 현대그룹이 금융사업 매각이라는 조치를 내놓았고 앞서 동부그룹도 그룹의 숙원이었던 반도체 매각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재계 9위인 한진그룹이 자구계획안을 내놓은 것은 그만큼 현재의 허리 기업 위기가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추광호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현재의 허리 기업 위기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외환위기 이후 이처럼 허리 기업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재계 순위의 지각변동까지 예상되는데 문제는 새로운 기업이 성장하면서 재계순위를 뒤바꿔놓는 선순환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30위권 이하는 물론 50위권에서조차 치고 올라올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어려움에 처한 허리 기업들의 순위가 추락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아남거나 인수합병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운 그룹이 순위를 대체하는 악순화의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내년 재계순위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며 "구조조정 기업들이 자산을 대폭 줄이고 있는 만큼 이들 기업의 큰 폭의 순위 하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동시다발적 경기침체가 주원인=이처럼 허리 기업이 휘청거리는 이유에 대해 김미애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이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지금은 어떤 업종이 안 좋다고 특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2008년 금융위기를 필두로 시작된 경기침체가 현재 세계적 저성장 기조로 이어지고 있고 버티던 기업들이 이제 서서히 한계 시점에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허리 기업들이 무너지는 것은 일종의 타임랙(Time lag)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세계적 경기침체, 그리고 이어진 저성장 기조에서 리딩그룹들은 상대적인 자금 여력을 바탕으로 연구개발과 마케팅 등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며 성장해나가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여력이 없는 허리 기업들은 투자 등도 제대로 못하면서 버텨오다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는 지적이다.



해운업종이 대표적이다. 현재 경영난에 봉착한 현대상선·한진해운 등은 수년째 지속된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을 크게 받았다. 경기침체가 물동량 감소로 이어졌고 이것이 해운업에 치명타를 가하면서 생존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해운 불황은 조선과 철강 등으로 이어지면서 이들 3가지 업종 모두 어려움에 처해 있다.

경기침체가 직접 원인이었다면 불황과 저성장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기업 책임도 거론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저성장 기조와 세계적 불황에 대비해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 다발적 글로벌 경기침체와 제때 대비하지 못한 허리 기업들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구조조정의 길로 몰리고 있는 셈이다.

◇허리 기업 위축시 한국경제 큰 타격=이 같은 허리 기업 위축은 한국경제에 큰 타격을 안겨다준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고용과 투자, 세수 등 여러 면에서 리딩기업이 많은 부분을 감당하고 있지만 허리 기업들도 함께 성장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부문에서 30대 그룹은 올해 15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4대 그룹이 90조원가량으로 나머지 58%가량은 5~30대 그룹이 담당하고 있다. 30대 그룹은 지난해 고용 규모를 전년보다 5.7% 확대했는데 40~50%가량은 4대 그룹 이하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세수 기여도 역시 높다. 매출액 상위 0.1%에 불과한 400여개 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65%(2012년 기준)인 26조5,000억원을 부담하고 있는 상태다. 한마디로 리딩그룹이 고용과 투자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허리 기업들 역시 상당 부분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허리 기업 도태를 막고 신규 기업이 중간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자연스럽게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제도적 요인이나 환경 등으로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을 국내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추광호 팀장은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조조정이 마련돼야 한다"며 "아울러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통해 새로운 기업들이 적극 신사업에 뛰어들어 성장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고 김미애 선임연구위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책 모두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경영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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