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 갈등이 표면화하면서 양대 경제 대국과 동시에 메가톤급 통상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난처한 입장에 몰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통상지형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중국이 이셔티브를 쥔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 사이에 정확히 낀 상황. 당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먼저 진행하던 중 지난해 11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TPP에까지 공식적으로 관심을 드러내 양다리를 걸치는 형국이다. 자칫 '고래 등 사이에 낀 새우' 신세가 돼 통상 한국의 좌표 설정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는 TPP와 한중 FTA 모두 경제적 측면에서만 효용성을 따지고 있는 수준이지만 차후 정치적 영역으로 들어가면 TPP 참여 여부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신흥국 FTA에 주력해 동북아의 통상허브를 만들겠다던 당초 신통상 전략이 글로벌 정치 논리 앞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할 수 있다는 얘기다.
◇TPP 참여 여부 늦춰질 듯=정부는 TPP에 대한 최종 참가 여부를 이르면 오는 8월 중 발표할 계획이다. 당초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농촌경제연구원 등이 합동으로 다음달 TPP 참여의 경제적 효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보고서를 발표하면 정부가 이를 바탕으로 6월 중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TPP 12개 회원국이 7월 중 고위급 회담을 열기로 하면서 발표 일정도 자연스럽게 뒤로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 현 회원국끼리도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참가를 결정해봐야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의 갈등 수위가 외교 ·안보 현안에서부터 경제 문제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확산되는 마당이어서 TPP 행보에 발목을 잡고 있다.
TPP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것도 우리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해 TPP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일본에 밀릴 수 없다는 위기감에 따라 전격적인 관심을 표명했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난 4월 일본 방문도 TPP와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우리 정부 역시 지난해 11월부터 12개 회원국과 각각 별도로 양자 회담을 갖고 참여 여부를 타진해왔으나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연구소의 연구위원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TPP가 이른 시일 내 진행되기는 어려운데 우리 정부가 쫓기듯 발을 담그면서 대(對)중국 관계만 어색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영향을 두고 분야별로 제각각 다른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진면 산업연구원 산업통상분석실장은 "수출주도형 경제인 우리나라가 TPP에서 배제되면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안을 것"이라고 분석했으나 농업계에서는 충분한 준비 없는 밀어붙이기식 협상에 따라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 통상압력 가할 가능성=우리와 FTA 양허품목 협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상황에 따라 '실력행사'에 나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우선 RCEP에 우선 편입하라고 요구해오면 대응수단이 마땅하지 않다.
이 경우 우리나라의 농식품 분야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최근 중국 정부는 우리 유(乳)업체가 생산하는 흰 우유에 대해 전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우유 수입금지 조치는 한국만을 특정해서 내린 조치는 아니므로 통상문제로 비화될 염려는 거의 없다는 게 산업부 등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중국 정부가 입맛대로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조치에 나설 경우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산업부의 또 다른 한 고위관계자는 "한중 FTA와 관련해 TPP를 연관시키는 움직임은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지만 유의하게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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