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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정대한 관문을 세우라

당나라 소종 때의 일이다. 과거시험장에 허리가 구부정한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소종이 안쓰러운 마음에 “결혼은 했는가”고 묻자 노인은 “과거 때문에 아직 못했습니다”고 답했다. 이어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고 물으니 “오십년 전에 스물 다섯이었습니다(五十年前二十五)”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기서 `나이 오십에 진사가 되면 그래도 젊은 편`이라는 `오십소진사(五十少進士)`라는 말이 생겼다. 경쟁이 극심한 과거가 출세의 유일한 방편인 데서 나온 웃지 못할 얘기다. 과거시험에 인생을 걸기는 우리 조상들도 만만치 않았다. 몰락한 가문을 일으키는 일부터 사랑을 성취하는 일까지 만사가 과거급제로 해결됐다. 많은 고대소설의 주인공들은 높은 벼슬에 올라 이름을 떨치고 쓰러진 가문을 세우는 `해피 엔딩`을 지향했다. 춘향전의 이 도령도 과거에 급제해 암행어사가 돼서야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제도를 둘러싼 폐해는 너무나 커서 다산 정약용은 “경서와 서책을 공부해 정사를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은 천명이나 백명 중 한 사람뿐이다. 그런데 사정은 어떤가. 지금 천하의 총명하고 재능있는 이들을 모아 일률적으로 과거라는 격식에 집어넣고는 본인의 개성은 아랑곳없이 마구 짓이기고 있으니, 어찌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하고 탄식하기까지 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직업이 생기고 그에 따라 가치관도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많은 젊은이들은 고시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으며 대학들은 서로 뒤질세라 이들의 뒷바라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시에 붙기만 하면 별 어려움 없이 평생 동안 직업과 고소득이 보장된다는 믿음 때문에 문과계열은 물론 이공계 출신조차 한번쯤은 고시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입만 열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치닫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학 이공계는 고시준비생 집합소나 의대ㆍ한의대로 건너뛰기 위한 임시 도피처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 98년 대입 자연계열 응시생은 37만명이었지만 올해는 21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 열흘여가 지났지만 특정 학교 출신이 출제위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거나 특정 교재에서 문제가 출제됐다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그리스의 수학자인 유클리드의 `배움의 길에는 왕도가 없다`는 금언(金言)은 금언(禁言)이 될 수밖에 없다. `쉽게 배워 편하게 많이 벌 수 있다면 그 길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어린 학생들에게 심어줄 뿐이다. 대학입학의 관문만큼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석영(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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