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근로자의 선택권 강화 및 수익률 제고를 위해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은행·보험·증권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우리나라 퇴직연금 시장 상황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5일 금융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최근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정부는 기존 퇴직연금시장의 비효율성 탓에 자본시장으로의 자금유입 등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금융사고 발생 가능성이다.
일본의 경우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따른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 2012년 일본 퇴직연금 운용사인 AIJ자산운용은 매년 큰 폭의 손실이 났음에도 운용보고서를 허위 작성하는 식으로 부실을 감췄다. 결국 2,000억엔(한화 2조8,000억원)의 수탁금 중 90% 이상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퇴직금 미지급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금형 퇴직연금제를 도입하기에 앞서 안전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상우 보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해 수탁자 책임을 강화하고 수급권을 보호하는 식의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이러한 장치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는 추이를 봐가면서 새로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산업 전반의 경직된 노사관계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기금형의 경우 의사결정 과정에 근로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 사용자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노조가 강성인 경우 퇴직연금이 노사 간 협상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기금 운영에 소요되는 인프라 및 비용도 문제다. 기금형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별도의 수탁자, 즉 기금을 지정해 운용하는 제도다.
실제 운용은 외부에 위탁하지만 기금운용 정책 등 큰 그림은 노사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따라서 관리부서를 만들고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이 같은 비용·시간적 비효율성 탓에 선진국에서도 기금형 가입율이 점차 떨어지는 실정이다. 영국의 경우 퇴직연금(DC형·확정기여형) 기금형 가입율은 2005년 89%에서 2010년 49%로 감소했다.
한 대형생보사 관계자는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하면 초기 운영비용이 발생하고 누군가는 이를 떠안아야 해서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퇴직연금은 무엇보다 안정성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안전장치부터 만들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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