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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융 100년정리] "통신발전이 금융세계화 견인"

국제 금융시장이 통신기술의 발달로 만개기를 맞이하고 있다. 세계적인 통신사 AFP는 21일 지난 100여년 동안 세계 금융시장 발달에 전환기가 됐던 각종 사건을 흥미있게 분석한 자료를 내놓았다.금융시장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1866년에 일어났다. 당시 외륜선 그레이트 이스튼호(號)는 아일랜드에서 신대륙 미국까지 대서양을 횡단하는 케이블을 설치하기 위해 의미있는 항해를 시작했다. 미국 미시시피의 사업가 시러스 W. 필드는 미국 상품을 유럽에 팔고 새로운 뉴스를 시차없이 미국 시장에 제공하기 위해 이같은 케이블 설치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투자자중 한 사람이었던 맨체스터의 목화사업자 존 펜더는 6년후 영국시장을 연결하는 케이블 앤 와이어리스(C&W)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모리스 옵스트 펠드 교수는 『케이블의 설치로 이전에 10일이 걸리던 대륙간 결제시간이 1시간으로 단축됐다』며 『당시 거대한 통신기술의 발전은 20세기 인류가 이룩한 어떤 성과물보다 의미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1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자유로운 자본시장이 유럽과 서반구, 아프리카, 극동지역의 금융센터를 연결시키며 세계를 하나로 묶어 갔다』고 분석했다. 금본위제가 시행되던 당시에는 환율이 고정돼 있었고 자본시장이 개방돼 있어 자본이동이 매우 활발했다. 19세기에 이코노미스트 잡지를 구독한 사람은 미국 철도사업과 남아프리카의 금광, 이집트 정부의 국채, 페루의 구아노 등에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제 금융시장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파괴됐으며 1925~31년 사이에 잠시 회복됐다 세계 대공황으로 다시 위축되기 시작했다. 특히 금본위제가 붕괴되자 정부는 자본이동에 통제를 가하기 시작했고 시장을 위험하게 보는 분위기마저 일기 시작했다. 60년대 들어 시장의 실패는 정책결정자들의 잘못된 정책에 있다는 반성과 함께 민간자본의 이동이 다시 재개됐다. 국제 자본이동은 70~80년대 더욱 활발해졌고 90년 이후 세계 금융시장의 개방으로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개화기를 맞이했다. 특히 20세기말이 가까와지면서 파생금융상품 등 금융상품의 혁신으로 축적된 자본이 가장 생산적인 투자로 이어지는 효율적인 자본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옵스트 펠드 교수는 『주기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국제 금융시장의 통합은 막대한 이익을 제공하고 있으며 제2의 대공황이나 제3차 세계대전 등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어떤 경우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형주 기자 LHJ30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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