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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80.출협회장 6년간의 빚

예림당을 창업하고 출판을 시작한지도 30년이 된다. 82년부터 출협 이사가 되고 상임이사와 부회장 6년을 거쳐 출협 회장으로 6년을 보냈으니 나는 예림당 사람이자 출협 사람이라 할 수도 있다. 출협 회장 임기를 마치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지도 1년 반이 넘었다. 지금은 출판부문 국제기구의 임원으로 있긴 하지만 출협 회장이던 때에 비하면 유유자적할 만치 시간에도 넉넉한 여유가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출협 회장 6년 동안에 너무 많은 빚을 졌구나`하는 생각을 떨어 버릴 수가 없다. 남에게 신세지는 일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만은 나 역시 젊어서부터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빚지는 일은 가급적 피하며 살아왔다. 내 일로 누구에게 부탁을 하거나 외상 또는 월부상품 구입을 싫어했고 대형 출판물을 기획했다가도 내 수중에 자금이 없으면 출판을 연기하거나 포기해 온 것도 돈을 빌리거나 남에게 신세지는 일이 싫었기 때문이다. 사업하는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성격상 어쩔 수가 없다. 지난 30년 동안 예림당이 외부의 빚이 거의 없이 느리지만 탄탄한 경영을 해올 수 있었던 것도 빚 지기 싫어하는 내 천성 탓이다. 남에게 부탁을 하고 신세지는 일도 일종의 빚이다 보니 마음에 부담이 되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출협 회장 6년 동안 나는 그야말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출협과 출판계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서 부탁을 하고 신세를 진 것이다. 내가 가장 자주 찾아다니고 부탁한 사람들은 정부 부처의 공무원과, 장관, 국회의원, 그리고 정부 산하 기관 사람들이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에도 부처가 많다 보니 장관도 여럿이고 차관이나 국장, 과장, 그리고 그 부처의 산하 기관까지 열거하면 찾아가 만나야 할 사람은 이루 셀 수조차 없다. 어디 그뿐인가? 장관이 바뀌거나 산하 기관장이 바뀌면 실무진도 바뀌게 되고 정권이라도 바뀌게 되면 그야말로 만나야 할 사람들이 모두다 교체되니까 찾아가 만나고 부탁하는 일도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협회의 필요사항을 해결하자면 안 찾아볼 수 없어서 한 다리 건너, 두 다리 건너 소개를 받아 찾아가 만나야 했고 만나면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만나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심지어 열 번이라도 찾아가서 설득을 하고 부탁을 하고 신세를 졌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부탁을 하러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그 부탁이 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출협이나 출판계를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명분으로 삼은 것은 오직 하나, 한국이 세계적으로 각광 받는 출판 선진국이 되는 일이었다. 출판선진국이란 무엇인가? 좋은 책을 많이 발행하고 내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낼 수 있고 정부와 국민 모두가 출판의 중요성을 깨우쳐서 다른 기업을 지원하듯이 출판계를 위한 금융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좋은 책을 발행할 때 제작비나 유통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출판 풍토를 만드는 일, 이것이 내가 목표로 삼고 하려던 일이었다. 정부의 예산배정을 받기 위해 경제기획원 장관을 찾아가고 예산실장을 만나고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도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학술도서 지원금을 배정 받고 출판금고 기금을 확충하고 국제도서전에 한국관을 설치했으며 도서유통현대화, 외국어 출판초록사업 등에 국고를 지원 받을 수 있었다. 도서정가제를 지키기 위해 공정위 경쟁촉진국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출판인쇄 진흥법 마련을 위해 문광위 국회의원을 한 사람씩 차례차례 만나 설득과 부탁을 했다. 그 외에도 책에 곁들이는 카세트 테이프의 부가세 면세와 출판사 표준소득률 인하를 위해 국세청을 드나들기도 하는 등 출협 회장 6년은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부탁하고 신세 지는 일로 보낸 셈이니 빚쟁이도 이런 빚쟁이가 없을 듯하다. <권홍우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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