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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매각 이것만은 지키자] <상> 제1원칙 '반도체 한국' 육성

금융 논리 아닌 '산업강국 만들기'로 가야 <BR>채권단, 자금회수 중시… 국익 차원 논의는 실종<BR>구주매각 비중 높을수록 심각한 국부 유출에 승자의 저주 우려 커져<BR>신주 발행비율 더 높여 반도체 경쟁력 키워야



지난 8일 SK와 STX가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를 접수하자 외환은행ㆍ정책금융공사 등 채권단 사이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이미 2001년 이후 세 번이나 하이닉스 매각에 고배를 마신데다 설상가상으로 이틀 전인 6일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혔던 현대중공업이 인수전 불참을 선언해 이번 매각도 불발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순식간에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실 채권단은 2009년 세 번째 하이닉스 매각이 효성의 중도하차로 불발로 끝나자 초조감을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 이번 인수의향서 접수를 앞둔 지난달 21일 채권단 가운데 좌장 격인 정책금융공사의 유재한 사장이 구주매각을 줄이고 신주발행을 늘리는 매각조건을 제시하며 기업들의 인수 참여를 유도했다. 그랬던 채권단이 SK와 STX의 경합으로 하이닉스 인수전이 모양새를 갖추자마자 한달 만에 돌연 태도를 바꾸고 있다. 하이닉스 채권단은 21일 "인수제안서 제출 때 구주를 많이 인수하는 기업에 가산점을 줄 예정"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어떻게 하면 국가 핵심산업인 반도체업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지 고민하는 대신 매각대금을 더 많이 받으려는 '샤일록'식 셈법에 혈안이 되는 모습이다. 이 같은 금융권의 태도는 한마디로 '돈 많이 받으면 산업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메모리반도체 세계 2위의 글로벌 기업인 하이닉스의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 비가격 경쟁을 유도하겠다던 한 달 전 겸손한 자세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피말리는 수율ㆍ미세공정 경쟁을 벌이며 세계 D램 2위, 낸드플래시 4위의 입지를 굳힌 하이닉스를 어떻게 하면 더 강하게 키울지에 대한 국익 차원의 심도 있는 논의는 실종되는 양상이다. 반도체는 '수출 한국'의 10분의1을 차지하는 1위 효자상품이다. 지난해 총 수출액 4,663억8,000만달러 중 반도체는 10.9%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두 회사가 이뤄낸 성과다. 따라서 이번 매각이 성공하려면 유 사장이 앞서 말했던 신주비율을 높이는 게 선행돼야 한다. 구주와 신주비율이 중요한 것은 인수자가 내는 인수대금이 가는 종착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구주를 팔면 돈은 고스란히 채권단이 가져간다. 반면 인수자가 신주를 사게 되면 그 돈은 하이닉스에 남아 투자 및 운영자금으로 쓰이게 된다. 채권단이 보유 중인 하이닉스 주식은 8,850만주(지분율 15%). 앞서 유 사장은 구주매각은 7.5% 이상, 신주발행 10% 이하, 인수자가 매입하는 지분은 신주와 구주를 합쳐 15% 이상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제는 많은 돈을 회수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금융논리가 반드시 국가 기간산업의 발전을 돕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유출 폐해를 입은 쌍용자동차의 중국 상하이차 인수가 대표적 사례다. 매년 수조원을 투자해야 하는 하이닉스로서는 사내 보유자금이 많을수록 글로벌 치킨게임(퇴출될 때까지 양보하지 않는 반도체 가격인하 경쟁)에서 승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하이닉스는 2004년부터 매년 1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2006년과 2007년에는 각각 4조3,000억원과 4조8,000억원의 대규모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를 단행, 2008년 치킨게임에서 삼성전자와 함께 최후에 웃을 수 있었다. 당시 치킨게임 결과 독일의 키몬다는 파산했고 대만의 난야 등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특히 구주비중을 높이는 매각은 심각한 국부유출을 낳을 공산이 크다. 채권단 가운데 가장 많은 3.24%(2,018만4,750주)를 보유한 외환은행의 하이닉스 매각차익은 고스란히 배당을 통해 외환은행의 주인인 론스타 수중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매각차익은 경영권 프리미엄 15%를 얹는다고 가정하면 론스트가 가져갈 돈은 약 2,8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론스타는 현대건설 매각이익 9,000억원이 들어온 올해 2ㆍ4분기에 보통주 1주당 1,510원의 분기 배당을 통해 4,969억원의 현금을 챙겨 '먹튀'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런 이유로 하이닉스 매각에서는 국익 차원에서 단세포적인 금융논리를 배제하고 '반도체 한국'의 미래를 지켜가도록 산업논리를 철저히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1개 생산라인을 까는 데 3조~4조원가량의 신규자금이 필요하다"며 "채권단 몫이 늘어날수록 인수기업은 승자의 저주에 빠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국익수호라는 차원에서 기술의 해외유출을 원천봉쇄하는 것도 이번 하이닉스 매각의 제1원칙이 돼야 한다는 게 반도체업계의 시각이다. 채권단이 자금회수에 급급해 자칫 쌍용차처럼 '기술 먹튀'를 초래한다면 하이닉스의 고급 반도체 기술이 악용돼 삼성전자의 아성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격보다는 비가격 요소, 즉 누가 '반도체 한국의 쌍두마차' 중 하나인 하이닉스를 잘 성장시키고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데 적임자인지를 따지는 게 이번 매각의 철칙이 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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