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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란 경협 컨퍼런스] 다시 지갑 연 테헤란 시민들… 월급 5배 달하는 삼성TV도 '선뜻'

■ 현지르포, '중동의 거인' 이란은 지금

의류쇼핑몰·건설현장등 경제전반에 활력 넘쳐

공항엔 비자 받으려는 한국기업 직원들 장사진

대낮 도심 한복판서 경매하듯 달러 사고 팔아

불투명한 환율시스템·들쭉날쭉 관세 경계해야

이란
전자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이란 테헤란 남부 좀후리가에 위치한 삼성전자 매장에 이란 고객들이 23일(현지시간) 방문해 TV를 살펴보고 있다. /테헤란=서일범기자
이란
서방 경제제재가 해제된 후 이란에서는 소비 심리가 살아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란 테헤란의 '청담동'인 자페라니에 있는 의류 브랜드 '망고' 매장에서 고객들이 24일(현지시간) 옷을 고르고 있다. /테헤란=서일범기자
이란 사진
이란의 대표 자동차 회사인 사이파의 테헤란 공장에서 기아차의 구형 프라이드 모델을 '나심'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하고 있다. 사이파는 지난 2005년 기아차로부터 프라이드의 생산라인과 판매권 등을 사들여 독자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이 모델은 한때 이란 내 시장점유율이 40%에 달하는 국민차로 통하기도 했다.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 시내를 자동차로 달리면 5분마다 한 번씩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공사가 중단돼 앙상한 골조만 흉물처럼 남은 건물과 고장으로 멈춰 선 자동차가 그것이다.

이는 이란에 대한 초강경 경제제재가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각종 물자의 반입이 제한되고 돈의 흐름마저 얼어붙어 경제 전반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란은 지난 5~6년간 사실상 모든 공사가 중단될 정도로 극심한 물자난을 겪었다.

하지만 올 들어 사정이 확 달라졌다. 이란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가 전면 해제돼 숨통이 트이자 경제 전반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테헤란에서는 전통시장에서부터 명품 쇼핑몰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변화가 시작됐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구 8,000만명, 원유 매장량 세계 4위의 중동 최대 시장이 마침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23일(현지시간) 방문한 테헤란 남부 좀후리 지역이 대표적인 곳이다. 테헤란의 용산전자상가 격인 이곳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합쳐 140여곳의 독립 브랜드 매장이 운영되고 있고 최근 제재 완화 훈풍에 따라 독일 블롬버그, 이탈리아 베코 같은 백색가전 업체들도 하나둘씩 매장을 열고 있다.

이 중 삼성전자 매장 한 곳에 들어서자 아직 퇴근시간 전인데도 TV와 냉장고 등을 고르는 고객들이 속속 이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모함마드씨는 "연말 특수가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제재 완화 전에 비해 방문객이 늘었고 구매 의사를 밝히는 고객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란은 3월21일부터 새해가 시작되기 때문에 1~2월은 연말로 분류된다. 한 고객에게 삼성전자 제품을 사는 이유를 묻자 "삼성은 브랜드가 확실하고 제품을 믿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모함마드씨는 "1월에만 4,900달러(약 600만원)짜리 TV 9대를 팔았다"며 "앞으로 가전제품 판매량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평범한 이란 근로자들의 월급은 대략 1,000달러선이다.



의류시장의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테헤란 북부 부촌(富村) 지역에 있는 명품 쇼핑몰 '팔라디움'은 24일 쇼핑객들로 북적였다. 단연 고객이 많은 매장은 스페인 생산유통일괄(SPA) 브랜드인 '망고'로 100달러 미만의 제품들이 쉴 새 없이 팔려나갔다. 이란에서는 외국계 의류 브랜드를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최근 경제제재가 느슨해지면서 망고·자라 같은 SPA 브랜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쇼핑객 알리씨는 "전에는 터키 브랜드인 '엘시월키키' 정도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선택의 폭이 더 넓어져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시장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벌써부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자가 이란에 입국한 23일 테헤란 공항에는 현대건설 등 다양한 국내 기업에서 출장 온 직원들이 비자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특히 이란 정부가 발주하는 병원 건설 공사는 사실상 한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게 현지 업체들의 설명이다.

비자 발급도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소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비즈니스 비자가 없으면 아예 이란 영내에 들어설 수 없었지만 제재 완화 이후에는 현지 업체의 초청장만 있으면 입국심사장에서 방문 비자를 내주고 있다. 오성호 주이란 한국대사관 문화홍보담당관은 "차차 비자 발급이 더 쉬워지고 방문이 편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란의 비즈니스 환경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불확실성이 크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환율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란 정부는 달러환율을 정해 고시하고 있지만 실제 시장환율은 지금도 암시장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실제로 23일 테헤란 중부광장에서는 환전상인 수십 명이 백주에 모여 경매하듯 달러를 사고파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의 한 기업인은 "이란 정부는 올해 고시환율과 시장환율의 격차를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 중 유일하게 이란 현지법인을 설립해 담배를 생산하고 있는 KT&G는 2013년 달러·리얄화 환율 급변동에 따라 상당한 손실을 입기도 했다.

들쭉날쭉한 관세도 문제다. 이란은 경제제재를 겪던 시절 달러 값이 폭등하면서 물가가 치솟는 악몽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이 때문에 이란은 지금도 사치성 물품에 대해서는 100%가 넘는 관세를 물릴 정도로 철저한 수입억제책을 시행하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떼어 이란에 파는 식의 사업은 힘들다는 얘기다. 박재영 KOTRA 테헤란무역관 과장은 "이란 정부는 철강처럼 자체 생산이 가능한 물품에 대해서는 관세율을 상향 조정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런 방향성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테헤란=서일범기자 squiz@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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