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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문제는 금융이야

이연선 경제부 차장

이연선




84년 만의 더위가 찾아온 2016년 5월, 대한민국은 구조조정 솥이 바글바글 끓고 있다. 과거에 보여준 칼잡이 솜씨로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은행들은 주력 산업의 썩은 살을 도려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우선 조선·해운 업체들이 도마에 올라 있다.

금융이 부실화한 기업을 솎아내는 구조조정의 칼을 잡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최근 구조조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금융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부터 이어져 온 금융만능주의다.

구조조정 책임 기관들의 면면을 보면 분명 문제가 있다. KDB산업은행만 봐도 그렇다. 개발금융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차치하고라도 산은의 현주소는 한국 금융의 낡은 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수년간 산은에 맡겨진 문제 기업들의 병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금융당국에 떠밀리는 산은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설명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조정이라면 조선·해운뿐 아니라 산은의 칼날 아래 서는 어떤 기업인들 환골탈태할 수 있을까.

구조조정 논의 과정도 그렇다. 금융당국이 익숙하고 쉬운 길부터 더듬어가다 보니 순서가 거꾸로 됐다. 병에 대한 진단이 나오고,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비용을 누가 책임지는가가 정상적인 순서다. 하지만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비용을 누가 낼 것인지에서부터 출발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국책은행 자본 확충을 둘러싼 논란이 그것이다. 구조조정 재원부터 만들어놓다 보니 필요한 액수가 10조원이다, 아니다 말이 많다.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면 될수록 더 또렷해지는 것은 금융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환란 이후 금융업은 비대해졌지만 여전히 기능은 약하고 칼은 무디다.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을 금융당국이 20년째 외치는 아이러니를 보면서 금융이 ‘산업의 핏줄’로 제 역할을 할 수는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 세계 순위에서 금융업이 우간다(81위)보다 못한 87위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조선업(1위)이나 해운업(5위)보다 한참 낮은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역시 구조조정의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와 달리 ‘금융 테두리 바깥의’ 국민들이 공감하는 산업 청사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독일은 정통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고 일본은 고령화에 대비해 생산과 서비스의 융합에 초점을 맞춘다. 항상 막판에 몰리는 우리의 구조조정은 금융에만 집중하고 미래에 대한 논의는 한가한 일처럼 취급받는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시일에 쫓겨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허둥지둥 그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걱정스럽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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