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대선후보 공식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수를 확보하면서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등극했다. 정치와는 무관한 부동산 재벌 출신 ‘아웃사이더’로 막말과 기행을 일삼아온 트럼프가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에 빠진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 16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공화당의 최종 대권주자로 낙점된 것은 미국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일로 평가된다.
26일(현지시간) AP통신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까지 총 1,238명의 대의원을 확보해 공화당 대통령후보 공식지명에 필요한 ‘매직넘버(1,237명)’를 달성했다. 이로써 그는 오는 7월18~21일 클리블랜드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식 대선후보로 추대되는 형식적 ‘대관식’만 남겨뒀다.
트럼프는 이날 노스다코타주 비스마르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된 것은 명예로운 일”이라며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이어 “힐러리는 아직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며 매직넘버를 달성하지 못한 맞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대한 공세를 펼쳤다.
트럼프의 공화당 대선후보 등극은 미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트럼프는 지난해 6월 출마 선언 이후 줄곧 경선 및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유지하며 정치 명문 부시가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주지사, ‘공화당의 미래’로 평가돼온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티파티의 총아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 무려 16명의 후보를 꺾었다.
공화당 주류는 트럼프의 과반 대의원 확보를 막고 중재 전당대회에서 제3의 후보를 추대하기 위해 총공세를 벌였지만 실패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의 승리를 두고 “불가능했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국 현실이 됐다”며 “트럼프가 태풍처럼 미국 정가를 휩쓸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승리를 계기로 정치혐오를 기반으로 인기를 증식시키는 트럼프의 전략도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양극화로 소득이 줄어든 미국 시민들의 불안감을 파고든 트럼프는 반(反)이민, 반자유무역을 기치로 내걸어 인기를 끌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의 승리는 현재의 미국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목소리가 증오로 나타난 것”이라며 “후보로서 그의 자질과 별개로 미국 사회의 이러한 분위기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대선후보 등극으로 워싱턴 정가는 이제 트럼프의 반정치주의가 본선에서도 통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후보인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트럼프가 이제까지 꺾어온 ‘기성’ 정치인의 아이콘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7월 클린턴 전 장관과의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이상 뒤졌지만 최근 워싱턴포스트(WP)와 ABC뉴스 조사에서는 46% 대 44%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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