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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이란 겉모습 아닌 내 몸 속의 생생함 그리는 것"

서용선 개인전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23일 개막

30여년 드로잉 및 아카이브 1만점 중 700여점

서용선 ‘자화상’ 109x78.5cm, 2007년작 /사진제공=아르코미술관




아침에 눈이 뜨이면 그대로 기듯이 거울이 놓인 화판 앞으로 갔다. 더위가 한창인 요맘때였기에 옷은 입는 둥 마는 둥 반(半) 벌거숭이인 채였다. 정신 차리려 애쓰지 않았다. 오히려 덜 깬 상태의 몽롱함을 붙들고 싶었다. 그렇게 2007년 여름의 일기처럼 서용선(65·사진)이 그린 ‘자화상’은 100여 점에 이른다. 한 점이 109×78.5cm 크기라 39점을 추려 걸었더니 전시장 벽 하나가 꽉 차고 말았다.

‘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전이 오는 10월 2일까지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제1,2전시실에서 열린다. 198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작가가 구축해 온 드로잉과 관련 아카이브 1만여 점 중에 약 700점을 엄선했다.

작가 서용선


전시의 시작도, 백미도 ‘자화상’ 연작이다. 검고 굵은 거친 선으로 그린 자화상은 성난 짐승 같다. 수십 개의 부릅뜬 눈은 작가 자신을 응시했고 관객을 노려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자다 깬 무의식의 상태에서 의식이 들어오는 그 순간 내가 어떻게 형태를 잡는지 알고 싶어 진행한 일종의 실험”이라며 “형태를 중심에 둔 게 아니라 봤을 때의 첫 느낌과 무의식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를 담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피카소를 비롯한 서양의 큐비즘(Cubism)이 ‘시점의 차이’를 표현한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어슷하게 조각난 그의 몸뚱이는 불안정한 의식으로 분절된 감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전혀 다르다.

끊임없이 자화상을 그리는 것에 대해 서용선은 “자신을 의식하는 것은 타인과의 구분을 통해서라지만 외피가 아닌 내 ‘몸 속’의 생생한 느낌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회화의 근원적 문제”라며 “눈으로 보는 것과 경험상의 감각은 확연히 다르기에 외양적 형태에 집착할수록 속에서 움직이는 감정·느낌을 표현하기는 더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서용선의 ‘자화상’ 연작 전시 전경 /사진제공=아르코미술관




그의 작업은 크게 자화상과 역사·도시·산수·신화 등으로 나뉜다. 다양한 주제들이지만 본질에 대한 접근이 전체를 관통한다. 서울·뉴욕·베이징 등 거리에서 포착한 서용선의 도시 풍경은 긴장과 불안이 감돌고 화난 듯 벌겋다. ‘자화상’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모습을 다루되 그 속내를 그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화려한 도시 이면에 자본주의의 모순과 사회 부조리를 꿰뚫어봤다. 인문학적으로 재해석한 역사화 시리즈는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읽게 만들고, 다양한 신화 연작은 잊고 지냈던 집단적 무의식을 끄집어 낸다.

아르코미술관에 전시된 서용선의 2016년 최신작 ‘도시에서’(왼쪽)와 그의 1989년 첫 개인전 출품작인 ‘집단의식-도시의 사람들’


공교롭게도 서용선은 첫 개인전을 이곳 아르코미술관의 전신인 옛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었다. 1989년 당시 출품한 4m 대작인 ‘집단의식-도시의 사람들’이 다시 걸렸다. 옆에는 약 30년을 뛰어넘은 최신작 ‘도시에서’가 벽 하나를 독차지했다. 너비 885㎝의 작품에는 갑갑한 도시의 풍경과 그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영주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는 “드로잉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생성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행하기에 밑그림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현대미술의 새로운 출구로 가치와 의미를 확장시킨다”며 “시작이자 출발점인 드로잉은 굳이 완성에 도달할 필요도 없기에 그 ‘열림’은 무한한 가능성과 확장성을 품는다”고 설명했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서용선의 ‘도시’ 연작 전시 전경 /사진제공=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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