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사랑받은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방송 초반 가장 이질적인 캐릭터는 드라마 속 전형적인 악녀 포지션으로 보였던 리듬체조 선수 ‘송시호’를 연기한 경수진이었다. 김복주(이성경 분)와 정준형(남주혁 분)의 싱그러운 연애가 메인인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아무래도 정준형의 전 여자친구에 김복주의 룸메이트이자 학교 선배인 ‘송시호’의 역할은 이들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는 방해자로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도요정 김복주’는 보통의 드라마 속 악녀 포지션인 ‘송시호’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건넨다. 리듬체조 선수로는 환갑을 지난 나이에도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국은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명예를 지켜내면서 동시에 이성경과 남주혁의 사랑을 응원해주는 경수진의 모습은 드라마 막바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벌써 서른. 여배우로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워낙 데뷔가 늦어 아직도 풋풋한 신인의 이미지가 강한 경수진에게도 ‘역도요정 김복주’는 참 고마운 작품이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적도의 남자’에서 이보영의 아역으로, ‘상어’에서 손예진의 아역으로 출연하며 아직 ‘배우 경수진’보다 ‘리틀 손예진’이나 ‘리틀 이보영’의 이미지가 강한 경수진에게 ‘역도요정 김복주’는 ‘배우 경수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했다.
“‘송시호’는 처음 대본을 봤을 때부터 위로해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아이였어요. 물론 ‘복주’라는 친구가 가진 에너지가 너무나 매력적이긴 하지만,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저는 ‘시호’를 선택할 것 같아요. 시호가 그동안 너무 외로웠고 혼자하는 사랑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 보듬어 주고 서로 마음을 주고 받는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경수진이 연기한 ‘송시호’라는 인물은 배우로서 극한의 육체적,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요구하는 캐릭터기도 했다. 리듬체조 선수라는 설정으로 인해 경수진은 서른을 넘긴 나이에 한창 때에도 쉽지 않은 리듬체조 연기에 도전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의 스트레스로 섭식장애와 몽유병 증상까지 보이며 결국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한다.
“촬영 전에 3개월 정도 사전 준비를 하고 촬영을 들어갔어요. 리듬체조 선수들과 섞여서 운동을 하다보니 리듬체조가 단순히 예쁘기만한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단순히 유연성만이 아닌 지탱할 수 있는 힘과 근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하루에 오전에는 공복상태로 3시간, 오후에도 4시간 정도씩 운동을 했어요. 촬영 중간에도 리듬체조복을 입는 날이 많아서 촬영이 있으면 아침부터 한강을 뛰거나 계속해도 운동을 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요.”
“시호가 국가대표 선수잖아요. 흉내만 내먄 된다는 생각으로 했다면 제가 견디지 못했을 거에요. 이 친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리듬체조는 빠질 수가 없었어요. 그 동안 살아온 환경이나 문제, 아픔 중심에 리듬체조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죠. 선수들의 땀과 노력은 당연한 과정일 정도로 이겨내야 할 게 많았어요. 긴 시간은 아니지만 훈련을 하면서 함부로 하면 안되겠구나, 진심으로 내가 이들과 같아야 이해할 수 있겠구나. 이것을 잘 전해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배우로서 경수진이 가진 모습은 ‘역도요정 김복주’ 속 ‘송시호’와는 오히려 다른 지점이 많다. ‘송시호’가 어린 나이부터 리듬체조 국가대표로 큰 기대를 받았고 적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과도한 정신적 압박을 받아왔다면, 경수진은 20대 중반에 연기를 시작해 벌써 30대에 접어들었지만 오히려 ‘배우의 길은 길다’는 자세로 천천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릴 적 여인천하 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연기자의 꿈을 키웠어요. 연기를 하려면 연기학원을 다녀야 하지만 그 적지 않은 비용을 부모님에게 계속 대달라고 하기 힘들었죠.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학교를 휴학하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학기 수업료를 내고, 빠른 데뷔는 아니지만 꽤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늦은 나이에 아역으로 데뷔한 것도 어떻게 보면 특별한 일이기 때문에 부담을 가지기 보다는 행운이라고 항상 긍적적으로 생각하려 했어요. 그만큼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기쁨이 컸죠.”
경수진이 가진 배우로서의 꿈과 목표는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경수진은 ‘송시호’처럼 자신이 만들어낸 꿈과 목표에 짓눌려 허덕이기보다는 지금을 충실하게 즐기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손예진의 아역’을 했던 배우가 아니라 ‘경수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으로 관객에게 더 익숙한 배우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구체적으로 일년에 드라마 영화 한작품씩 하자 라는 계획도 물론 있지만, 지금은 다양하게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분이 저한테 표독스럽거나 격정적인 멜로도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2017년에는 경수진이라는 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마라톤도 이제 초보니까 10km부터 시작해서 도전해보고 싶고, 영어나 피아노 같은 취미도 그렇구요. 나 자신을 충족시키는 한 해를 계획하고 있어요. 이런 일상들이 언젠가는 제가 출연하는 작품에서 연기에 도움이 되는 날이 온다면 너무나 감사하고 기쁠 것 같아요.”
“욕심이 많다고 해야하나, 아직 저는 배우로서 더 보여드릴 것이 많아요. 차근차근 제 눈앞에 놓여진 배역에 충실했고 앞으로도 제 남은 인생에서 그런 기회가 계속된다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라 생각해요. 나이가 들어서도 시청자들이 계속 찾아주는 배우가 될 수 있다면 너무 감사하고 기쁠 것 같아요. 지금 순간에 충실하면서 그런 멋진 연기 인생을 걷고 싶어요.”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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