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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윤옥영의 해외경매 이야기] 1,000만弗 넘게 팔린 작품만 50여점...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전설'

생존작가 중 연간 경매거래액 1위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팝아트·단색화 넘나드는 추상으로 독자적 화풍 완성

'추상화 599' 4,600만弗에 거래...작가 최고가 기록

한해 거래액 1억700만弗로 경매 총액의 4% 차지

에릭 클랩튼이 소장했던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1994년작 ‘추상화(Abstraktes Bild) 809-4’는 2012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3,400만달러에 팔렸다.




2012년 런던 소더비에 나온 독일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88)의 1994년작 ‘추상화(Abstraktes Bild) 809-4’는 블루스의 거장이자 ‘기타의 신’으로 불리는 에릭 클랩튼이 소장했던 작품으로 3,400만달러에 팔리면서 당시 작가의 거래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 뉴욕 소더비에서는 리히터가 1968년에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추상적 풍경화 ‘대성당 광장, 밀라노’가 약 3,700만 달러에 거래돼 작가의 최고가는 물론 생존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을 동시에 경신했다. 2015년에는 런던 소더비에서 1986년 제작된 ‘추상화(Abstraktes Bild) 599’가 4,600만달러에 거래되면서 또 한번 작가의 최고가 기록을 만들어냈는데,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리히터의 작품 중 비싼 것으로 나아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런던 소더비에는 에릭 클랩튼이 소장하던 또 한 점의 추상화가 나왔고 약 2,200만 달러에 팔렸다.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1968년에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추상적 풍경화 ‘대성당 광장, 밀라노’는 2013년 뉴욕 소더비에서 약 3,700만 달러에 팔려 당시 작가의 최고가는 물론 생존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사진출처=소더비


에릭 클랩튼이 소장했던 작품으로 2016년 런던 소더비에서 2,200만 달러에 팔린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1994년작 ‘추상화(Abstraktes Bild) 809-2’ /사진출처=소더비


앞서 2012년과 2016년 런던 소더비에서 각각 팔린 에릭 클랩튼의 소장품은 애초에 4점이 연작으로 제작된 작품 중의 두 점이었다. 1995년 영국의 안소니 도페이 갤러리(Anthony d‘Offay Gallery)에서 열린 리히터의 추상회화 전시에서 선보인 이래 그의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아 왔는데, 그 중 테이트미술관과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공동 소장품이 된 한 점(809-3)을 제외한 3점이 독일의 유명 소장가 부부의 컬렉션으로 있다가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나온 것을 2001년 에릭 클랩튼이 구매했다. 2001년 당시 이들 작품 세 점의 구입가는 약 340만 달러였는데, 그중 2점이 십 수년 후 5,600만 달러로 가치를 끌어올린 것이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1990년대를 대표하는 추상화 연작으로, 에릭 클랩튼이 2001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3점 합쳐 340만 달러에 구입했고 이 중 2점을 2012년과 2016년에 경매에 올려 5,600만 달러에 팔았다. /사진출처=소더비




아트바젤(Art Basel)과 UBS가 발행한 ‘2018 아트마켓 리포트’에 따르면 전후 현대미술 부문에서 100만달러 이상으로 거래된 작품 중 생존작가의 작품은 총액 기준 약 39%, 1,000만달러 이상 거래된 작품 중에는 약 24%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생존작가 가운데 약 1억700만달러의 연간 거래 금액으로 전체 거래 총액의 약 4%를 차지한 리히터는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가장 많이 판매된 생존작가 1위를 지켰다. 그동안 경매를 통해 1,000만달러 이상에 거래된 작품 수만 50여 점에 이르는 리히터는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전후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이다.

리히터는 1932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나 제3제국 체제하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의 딸로 아들의 예술가의 길을 응원했다. 10대 시절부터 배우기 시작한 드로잉에 흥미를 느껴 이미 16세에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당시 동독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요되고 예술은 정치에 동원되는 분위기였는데, 1951년부터 드레스덴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수학했던 리히터의 첫 작업은 공산주의 배너를 만들고 벽화를 그리는 작업이었다. 다행히 벽화 작업은 상당히 성공적이어서 그 수입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1959년 여행에서 제 2회 카셀 도큐멘타(Ducumenta 2)를 봤고 특히 잭슨 폴록과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에서 국제적 모더니즘과 전위 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발견했다. 이는 그의 예술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완성되기 직전 뒤셀도르프로 이주한 그는 1960년대에 쾰른과 뒤셀도르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레 예술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을 시작했다. 이때 리히터가 동료들과 전개한 ‘자본주의 사실주의 운동’은 이는 동독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대응이자 당시 미국에서 주목받던 팝 아트의 독일적 변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961년부터 자신이 찍거나 신문·잡지 등에서 가져온 각종 사진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이를 캔버스에 투영하고 그린 후 흐릿하게 하여 형태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게 하는 일련의 사진 회화 작업을 시작한다. 실제 대상과 전혀 다른 것을 그려내기 위해 이미지를 흐리게 하는 방식 등을 사용하고 그 결과 관람자는 대상으로부터 분리돼 구성과 색채 등 회화의 근본적 요소에 더 집중하게 된다.

에릭 클랩튼이 소장했던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1994년작 ‘추상화(Abstraktes Bild) 809-4’는 2012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3,400만달러에 팔렸다.


1960년대 중반부터 리히터는 추상 작업을 시작하는데 기존의 색채 표에 의거한 색면 추상으로부터 단색조 회화, 그리고 사진처럼 그리는 채색 추상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1976년부터 그의 후기를 대표하는 추상화(Abstraktes bild) 연작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리히터는 캔버스 위에서 다양한 색의 물감을 자유롭게 쓰고 커다란 고무 롤러인 스퀴지를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그 표면에서는 마치 고고학 탐사같이 수많은 추상적 요소들이 서로 다른 물감 층 사이로 드러난다. 절대적인 통제가 불가능한 스퀴지를 이용하면서 리히터는 그림에서 작가의 손을 제거한 셈이니, 결국 그의 추상은 우연을 통해 만들어진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리히터의 국제적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1991년 런던 테이트 미술관 전시를 비롯해 1992년 9회 카셀 도큐멘타 이후 1993년과 1994년 유럽 주요 도시를 순회한 전시들을 통해 주요 작품들을 선보였고, 이들 전시의 성공 이후 그의 작품은 전 세계의 주요 미술관에 소장됐다. 현재 리히터의 작품은 약 40%가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리히터는 팝 아트와 단색 회화, 추상표현주의, 포토리얼리즘 등 다양한 흐름과 연결되면서도 어느 하나로만 규정지을 수 없는 독자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고 예술의 개념적 가능성에 더 큰 관심을 갖는 시대가 열리면서 미술계는 회화의 종말을 예견했지만, 그는 상상할 수 없이 다양한 양식을 통해 회화라는 매체를 고민하고 그 본질과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며 회화의 영역을 보다 넓은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회화 대 사진, 기록 대 재현, 구상과 추상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아주 복합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리히터는 거리낌 없이 경계를 넘나들며 아직도 회화가 가장 힘있게 모든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면서 이 시대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서울옥션(063170) 국제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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