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기술의 총본산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김명자)의 차기 회장에 이우일(65·사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최근 내정됐다. 604개의 학회와 단체를 망라한 과총의 차기 사령탑이 되는 그는 오는 27일 정기총회에서 동의 절차를 거쳐 내년 3월 임기 3년의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지난 1966년 과총 설립 이후 이사회에서 선출돼 총회에 추천된 차기 회장 후보자가 부결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과총은 현 회장 임기 만료 1년 전에 차기 회장을 선출하는 전통이 있다.
1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기자와 만난 이 내정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아 과학기술이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국가경영의 핵심전략이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미중 무역전쟁도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첨단기술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고 밝혔다. 연간 20조원 이상의 정부 연구개발(R&D)비 등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수립에 과학기술계의 집약된 의견을 반영하는 데 과총이 대변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포부다. 과학기술 중심의 국가발전 비전을 제시하는 과총의 임무도 강화할 방침이다.
서울대 부총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서울대 총장 선거에서 오세정 총장에 이어 2위를 기록하는 등 두 차례 총장직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재기해 최근 과총 이사회에서 고등과학원장 출신인 금종해 대한수학회장을 제치고 차기 회장으로 추천됐다. 지난해 서울대 총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질 때 그는 “‘노벨상 타기’ 연구과제 등 소수의 학자에게만 지원하는 것은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연구자가 흔들림 없이 연구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산학협력단 등 연구행정의 혁신을 강조한 바 있다.
이 내정자는 이날 인터뷰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예로 들며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이나 아이폰이 불과 12년 전에 처음 나왔고 인터넷은 20년이 조금 넘었다. 이제 5세대(5G) 통신이 도입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사형선고와 같던 암도 5년 생존율이 지난 20년간 40%에서 70%로 늘었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지금처럼 불확실성과 혼돈의 시대일수록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지금 우리가 차세대 성장동력의 부재를 걱정하고 있고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환경·에너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서 “AI 등 정보기술과 바이오 기술의 발전이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며 과학기술인의 소명의식과 역량 결집을 역설했다.
미세먼지나 감염병 등 과학기술 민간외교의 중요성도 거론했다. 그는 “환경·보건·에너지 등의 글로벌 이슈는 과학외교가 매우 중요한데 정부외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과총이 과학외교의 민간대사로 국제 협업의 창구가 되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일에 앞장서고 남북 과학기술 협력도 주도적으로 이끌겠다는 소신도 피력했다.
과총이 과학기술인의 유기적 연결체로서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도 힘주어 말했다. 그는 “정부 R&D 예산이 1조원을 넘은 1993년까지 과학기술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웠고 이후 싹을 잘 키웠다”며 “이제는 다 같이 합심해 새로운 종을 수확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융합과 소통을 통해 새 분야에서 착상이 이뤄져 가치와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창업·수성에 이은 경장(更張)기에 과총이 과학기술·학문·산업·사회·세대·지역을 아울러 사람과 지식의 교류 마당이 돼야 한다”고 했다. 지역을 과학기술 혁신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과학기술인이 자칫 사회와 유리돼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했다. 그는 “그동안 과학기술인이 사회와의 소통에 취약했다”며 “미세먼지 등 시민의 삶과 직결된 이슈는 의견을 적극 제시해 불안과 혼란을 불식시키겠다”고 밝혔다. 수소경제 등 산업과의 연계 강화에도 적극 나서겠다고도 말했다.
젊은 과학기술인이 과총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변신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젊은 회원이 거리낌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경력개발과 창업 멘토링, 글로벌 심포지엄 지원에 나서고 청소년을 위한 과학문화 확산에도 역점을 두겠다”고 소개했다.
올봄 착공해 2021년 완공되는 과학기술회관 재건축(사이언스 플라자) 사업도 혁신 클러스터·플랫폼에 걸맞게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은 2016년 재건축 허가가 났으나 중대한 설계 하자로 인해 현 김명자 회장이 결단을 내려 공론화를 거쳐 재설계가 이뤄졌다. 김 회장은 지난 2년간 국가 R&D의 산업화 성과를 높이기 위한 혁신방안과 연구윤리 확립 노력과 함께 미세먼지 원인·측정·저감을 위한 과학기술 해법, (미세)플라스틱 감축과 재활용, 수소경제 사회 준비 등 사회참여형 과학기술 사업을 활발히 펴왔다.
한편 이 내정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과 ‘올해의 과학상·공학상’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각각 발탁됐던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서울대 교수)과 서은경 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전북대 교수)도 이 상의 심사위원이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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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서울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석사 △미국 미시간대 기계공학 박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조교수, 부교수, 교수 △대학산업기술지원단(UNITEF) 단장 △서울대 공대 학장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서울대 연구부총장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상임대표 △2017~ 과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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