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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공포 편승한 당국, 인허가 미뤄…기업 투자 잇달아 좌초

■환경포퓰리즘에 발목잡힌 성장산업

냉각탑 수증기보고 "대기오염"

용인 네이버 데이터센터 '반대'

5G 상용화로 통신망 시급한데

"송전탑 전자파 해롭다" 또 '반대'

대중 막연한 불안감에 가로막혀

적법한 IT·바이오투자 없던일로

주민들의 환경 불안증에 부딪혀 무산된 경기도 용인 네이버 데이터센터 건립부지/사진제공=네이버




네이버의 경기도 용인 데이터센터 건립사업이 환경 이슈를 제기한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산업계를 울리는 ‘환경포퓰리즘’ 문제가 재조명받고 있다. 관계 당국이 대중의 막연한 환경 관련 불안감에 편승해 인허가를 미루는 바람에 기업이 적법한 절차와 기준에 맞춰 추진한 인프라구축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거나 무산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혹은 당국이 사업을 통과시켜주더라도 현실에 비춰볼 때 비현실적인 친환경기준을 붙여 산업의 경제성을 저해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의 입지 확보는 점점 더 난제가 돼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클라우드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기반시설인 데이터센터의 확충이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네이버 사례처럼 지역민이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나선다면 한국에서는 데이터센터를 짓기 어렵다. 중형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설을 검토 중인 한 정보기술(IT) 기업은 “데이터센터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기 공급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지역에 짓는 게 유리하지만 전자장비들을 식히려고 설치한 냉각탑에서 물이 증발돼 나오는 것을 대기오염 연기로 오인해 주민들이 기피시설로 인식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도시에서 부지를 구하기는 점점 쉽지 않아졌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교외나 시골 오지에 짓는 게 쉬운 일도 아니다.



이동통신사의 한 관계자는 “교외나 시골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결국 고압송전선로를 별도로 끌어와야 하는데 해당 송전탑 건설예정 경로에 있는 주민들이나 환경단체가 전자파나 지역 경관 훼손 가능성을 제기하면 그마저도 사업을 장담하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생계형’ 단체는 환경 관련 이슈가 있는 지역민들에게 사실상 용역을 받고 ‘대리 시위꾼’으로 나서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경우도 있어 기업으로서는 매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지역민이 나서기 전에 당국 스스로 환경포퓰리즘 논란을 자초하기도 한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관계자는 “대형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일정 비율로 신재생에너지로 쓰도록 의무화된 규정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신재생에너지는 한국전력을 통해 공급받을 수 없어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데이터센터는 적어도 20㎿ 이상의 전력을 소요하기 때문에 그중 10%만 신재생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해도 2㎿ 규모의 발전용량을 낼 수 있는 설비를 직접 지어야 하니 그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이 정도 발전용량의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지으려면 이 또한 데이터센터의 입지를 제약하는 변수가 된다.

지난 4월 본격 상용화한 5세대(5G) 이동통신서비스를 위해 전국 통신인프라를 재구축해야 하는 이동통신사들에도 환경포퓰리즘은 부담거리다. 통신에 쓰이는 각종 전자파가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대중들의 공포감으로 인해 주거지나 상업시설 밀집지역에서 통신설비들을 놓을 부지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통사의 한 관계자는 “이동통신서비스에 사용하는 전파는 주파수가 매우 높아 저주파의료기와 달리 장애물을 만나면 투과하지 않고 반사된다”며 “따라서 통신기지국 등으로 중계되는 전파가 몸속에 침투해 암을 일으킨다는 식의 풍문은 비과학적인 괴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막연하게 전자파가 몸에 안 좋다는 불안감 때문에 통신설비를 자신의 주거지에 인접해 짓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환경포퓰리즘은 신성장산업으로 꼽히는 제약·바이오 분야에도 먹구름을 드리웠다. 한국콜마가 오는 8월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서울 내곡동 통합연구소도 인근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입주에 난항을 겪었다. 한국콜마는 2016년 399억원을 들여 SH공사로부터 8,127㎡(약 2,500평) 규모의 부지를 매입한 뒤 통합연구소 공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유해물질 배출이 우려된다는 주민들의 반발로 한동안 어려움을 겪다 최근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에 대한 주민 불안감으로 좌초된 용인 뷰티산업단지 조감도. /이미지출처=경기도


이 과정에서 한국콜마는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통합연구소에서 동물실험을 일절 하지 않고 화장품에 들어가는 유해물질도 실험용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설명문까지 배포했다. 수질오염에 대한 우려를 없애기 위해 의약품 실험에 쓰이는 휘발성 물질도 외부 전문업체에 처리를 위탁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통합연구소의 외벽도 당초 유리로 건설될 예정이었지만 빛 반사에 따른 공해 문제를 제기하자 한국콜마는 중간에 설계도까지 변경했다.

한국콜마는 내곡동 통합연구소가 전국 11곳에 분산된 연구소가 입주하는 회사의 핵심 자산인 만큼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특히 연구개발(R&D) 경쟁력을 좌우하는 석·박사급 인력을 원활하게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내곡동 통합연구소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아모레퍼시픽은 올 2월 경기 용인시에 뷰티산업단지를 짓겠다는 계획을 백지화했다. 2017년 3월 1,630억원을 들여 52만4,000㎡(약 16만평) 부지에 화장품 생산공장과 연구소를 건설하겠다는 양해각서(MOU)를 용인시와 체결한 지 2년여 만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유해물질 배출과 환경오염을 이유로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결국 없던 일이 됐다.

환경포퓰리즘의 더 큰 문제는 환경 불안감에 편승해 이익을 보려는 전문 시위꾼들과 이에 휘둘리는 인허가 당국이다. 최근 수도권에서 대규모 시설을 지으려다 주민 반대로 포기한 한 대기업 간부는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단체를 보면 전문 시위꾼들이 투입돼 주민들을 부추겨 우리 회사에 보상금을 타낼 수 있는 것처럼 여론을 일으키더라”며 “우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업을 하는 것이고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서도 사전·사후에 철저히 검증받겠다고 했지만 소관 지자체가 주민 눈치를 보면서 자꾸 추가 소명을 요구하고 결정을 미뤄 사업을 포기하게 됐다”고 전했다. 결국 기업투자를 발목 잡아 한몫 챙겨보겠다는 기회주의적 심리가 환경불안감과 복잡하게 얽히며 신산업의 인프라 확충을 가로막는 고질병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지자체 단체장이 바뀌면 기존의 치적 사업의 동력이 저하되는 점도 문제다. 네이버 용인 데이터센터와 아모레퍼시픽 뷰티산업단지는 각각 전임 용인시장과 전임 경기도지사가 관심을 갖고 유치한 사업인데 각각 백군기 용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취임한 후 지자체가 인허가를 머뭇거리는 가운데 좌초했다. /민병권·이지성·임진혁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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