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도덕 교사가 성 평등 주제의 수업 시간에 다소 자극적인 영화를 보여줬다는 이유로 시 교육청이 ‘성범죄 매뉴얼’을 적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여성계부터 해당 영화의 감독까지 합세해 각각 찬반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9~10월과 지난 3월 배이상헌 교사는 성 윤리 수업 중 프랑스 단편 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학생들에게 보여줬다. 영화는 2010년에 만들어진 11분짜리 단편영화로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성적인 괴롭힘 등 젠더 이슈를 다루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뒤바뀐 가상 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여성 현실을 뒤바뀐 성 역할로 깨닫게 하는 ‘미러링’ 효과를 노린 영화다. 지난 2014년 ‘억압받는 다수’의 감독이 직접 유튜브에 영상을 무료로 공개했을 때 조회 수가 1,325만 회를 기록했으며 한국어 자막판은 25만 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문제는 영화의 노골적인 표현 방식에 있었다. ‘억압받는 다수’는 일부 장면과 대사로 인해 19세 미만 관람 불가 등급을 판정받았다. 실제 상반신을 노출한 여성이 등장하고 여성들이 남성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려는 장면, 성기를 적나라하게 거론하는 대사 등이 학생들의 거부감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안은 익명의 학생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알려졌다. 배이상헌 교사는 교육부가 지난 3월 배포한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에 따라 직위 해제됐다. 앞서 광주시교육청가 ‘스쿨미투’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자 지난해 10월 성비위 교사는 교단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해당 학교는 자체 성고충 심의위원회를 열어 성 비위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시 교육청의 요청으로 경찰은 배이 교사에게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배이 교수의 직위 해제를 찬성하는 측은 교사와 학생 간 권력 관계를 고려해 이번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19일 광주여성민우회는 성명을 내고 “피해자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우회는 “피해자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 사안을 바라보고 상상하고 공감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왜 그 상황을 폭력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질문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에는 인천여성의전화·인천페미액션이 “성평등 교육을 말하며 스쿨미투 피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지우지 말라”는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 단체 측은 “교사의 의도가 옳았다고 하더라도, 성평등 교육을 위한 공인된 자료라고 하더라도, 학교 내 젠더 권력에 대한 이해와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교사의 교육을 성평등 교육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배이 교수의 직위 해제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영화 내용의 자극성을 인정하면서도 시 교육청의 대응이 과하다고 비판한다. 학생들이 직접적인 성 불평등 표현방식에 느낀 불편함을 느꼈다고 해서 성폭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억압받는 다수’의 엘레노르 푸리아 감독은 12일 “의미 없는 싸움을 멈추고 차별과 싸워달라”는 편지를 공개했다. 푸리아 감독은 “영화의 몇몇 장면으로 인해 충격을 받은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내가 촬영한 이미지들은 결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보다 충격적이지 않다. 그 이미지들은 그저 불평등한 사회를 비추어주는 거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러링 영상을 보고 수치심을 느꼈다는 민원은 여러 교육 현장에서 있을 것이고 여성 강사가 영상을 틀었을 때도 같은 민원이 있을 수 있다”면서 “(무엇이 성폭력인지) 세밀하게 파악하고 기준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성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는 사회 인식이 배이 교수의 교육의 본질을 흐렸다는 주장도 나온다. 해당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자극적인 ‘노출’이나 ‘성폭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월 글로벌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는 드라마 ‘Sex Education(성 교육)’을 국내서 방영하는 과정에서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라는 제목으로 바꿔 방영해 논란이 일은 바 있다. 해당 드라마는 성 상담사인 엄마에게 어깨너머 습득한 지식으로 친구들에게 성 상담소를 여는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그러나 한국판 제목에는 성에 관한 논의를 금기시 여기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한국에서의 성은 여전히 ‘비밀’이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한 보도를 접한 네티즌의 입장도 갈리고 있다. 한 네티즌은 “징계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 이게 직위해제까지 갈 일은 아닌 듯하다”고 주장했다. 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봤다고 자신을 소개한 네티즌은 “남녀 성차별을 담은 이 영화를 보여준 게 성폭력이라면 일반 다른 영화들도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고 우려했다. 반면 또 다른 네티즌은 “영화 자체는 사회적 성 문제를 충분히 보여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서도 “다만 아직 성적 가치관이 없는 중1·2 학생들이 보기에는 거부감을 느낄 여지도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극적인 부분을 삭제한 채 영화를 보여주고 중간 중간 교사의 설명으로 수업을 진행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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