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신 김에 여기서 라이터로 불을 붙여보죠.”
지난 23일 삼성SDI(006400) 울산사업장에서 열린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안전대책 설명회 도중 전영현 삼성SDI 사장의 제안에 참석자들은 움찔했다. ESS모듈의 화재테스트 시연에 앞서 특별한 안전장치가 없는 회의실에서 불을 붙이겠다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전 사장의 자신감과 함께 소화용 약품이 발린 고무 재질의 부품에 불을 붙이자 ‘타다닥’ 약품 캡슐 터지는 소리가 나며 검게 그을렸을뿐 불은 붙지 않았다. 전 사장은 “천재지변이나 예기치 않은 요인으로 화재가 나더라도 불이 번지는 것은 100%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지난 14일 국내 ESS 화재에 대한 불안을 불식시키고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고강도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이달부터 판매되는 모든 ESS 배터리는 물론 이미 설치된 국내 1,000여곳의 ESS 사이트에도 2,000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 특수 개발한 소화시스템을 탑재하기로 했다. 이날 화재 테스트 시연은 삼성SDI의 특수 소화시스템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화재를 차단할 수 있는지 직접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안전성 평가동에서 다시 열린 소화용 첨단약품 테스트는 배터리 모듈에 불이 붙은 가스버너를 넣은 채 진행됐다. 첨단약품과 열확산 차단재가 탑재된 모듈의 뚜껑을 덮자 캡슐 터지는 소리와 함께 10여초 만에 불이 꺼졌다. 허은기 삼성SDI 중대형시스템개발팀장 전무는 “소화 약품 캡슐이 분사되면서 화재를 컨트롤 한 것”이라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배터리 교체를 권장하지만 뚜껑만 바꿔도 배터리는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삼성SDI가 약 100억원을 들여 구축한 열노출 평가실에서는 열확산 차단재에 대한 테스트가 이어졌다. 스테인리스로 된 못이 ESS 배터리 셀을 찌르자 80㎝ 두께의 콘크리트 벽으로 된 실험실 밖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 열확산 차단재가 적용되지 않은 제품의 경우 화재가 발생한 셀 온도가 300℃를 넘나드는 동안 좌우에 있던 셀들의 온도도 최대 200℃를 넘어갔다. 좌우 셀의 온도가 모두 100℃를 넘은 뒤에는 2차 폭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반면 차단재를 적용했을 때 주변 셀의 온도는 50℃를 넘지 않았다. 허 전무는 “주변 셀의 온도가 100℃ 이하로 컨트롤 되면 불이 옮겨붙지 않는다”면서 “온도가 올라가더라도 10분 내로 서서히 가라앉게 된다”고 말했다. 전 사장은 “국내 사이트가 1,000곳이 넘는 만큼 최대한 빨리 소화시스템 설치를 진행한다 해도 7~8개월은 걸릴 것으로 본다”면서도 “전 세계 ESS 산업을 리드하고 있는 업체로서 국내 생태계가 빨리 복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