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한국 업체들의 반도체 장비 투자가 주춤한 사이 대만과 북미 업체의 투자가 빠르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한국 업체는 투자를 축소하며 공급량을 조절중인 반면 시스템 반도체 중심의 대만과 북미 업체들은 투자를 꾸준히 늘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4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에 따르면 한국에서 발생한 반도체 장비 매출은 올 3·4분기 22억 달러로 전년 동기의 34억5,000만 달러 대비 36% 가량 줄었다. 직전 분기와 대비해도 관련 매출이 15% 줄었다.
한국 기업의 반도체 장비 투자 감소는 메모리 반도체 시황과 관련이 깊다. 지난달 글로벌 D램(DDR 8Gb 기준) 가격은 개당 2.81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수준으로 폭락하는 등 시황이 좋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 들어 D램과 낸드플래시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반도체 가격은 내년 2·4분기 이후에나 반등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장비 투자를 통한 공급 물량 확대에 나설 이유가 없는 셈이다. 특히 이들 업체는 2017년부터 대규모 공장 증설 등을 통해 대규모 투자 집행을 마무리한 상황이다.
반면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업계 1위인 TSMC를 비롯해 중저가 모바일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의 최강자인 미디어텍 등을 보유한 대만은 올 3·4분기 투자액이 39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4%늘었다. 직전 분기와 대비해도 21% 가량 투자액이 증가했다. TSMC는 극자외선(EUV) 공정 고도화를 위해 네덜란드 ASML로부터 관련 장비를 대거 사들이는 등 공격적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텔, 퀄컴, 엔비디아 등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인 북미 지역 투자액도 24억9,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6% 늘었다.
최근 미국과의 무역분쟁에 따른 수출입 제한으로 ‘반도체 굴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은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한 34억4,000만 달러의 투자를 기록했다. 다만 투자 규모가 한국대비 1.5배 수준으로 반도체 자급률 70%이상을 목표로 하는 ‘중국제조2025’ 추진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파나소닉이 반도체 부문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진 일본의 투자액은 전년 동기 대비 30% 가량 줄어든 16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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