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까지만 해도 하락세를 이어오던 구리 가격이 반등을 시도하고 있다. 반면 3·4분기까지 승승장구하던 금 가격은 오히려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다. 이를 두고 금융시장에서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금은 ‘안전자산’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반면 ‘닥터 코퍼’로 불리는 구리는 경기에 민감한 원자재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10일 한국광물자원공사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기준 금 가격 대비 구리 가격 비율은 4.10으로 나타났다. 이 비율은 올해 상반기만 해도 4.4~5.1 사이를 맴돌다가 8월 들어서는 4를 밑돌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달부터 점차 회복세를 보이며 4를 기준으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금 가격 대비 구리 가격 비율은 글로벌 경기 회복을 가늠하는 척도로 쓰인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안전자산인 금의 수요는 늘어난다. 반면 구리는 제조업 부문 수요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아 경기가 나쁠수록 가격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구리에 ‘닥터 코퍼(Dr. Copper·구리 박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9월을 기점으로 금 가격과 구리 가격 사이에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9~10월을 기점으로 미중 무역협상이 본격화하고 글로벌 통화완화 ‘공조’가 나타나면서 글로벌 경기 회복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타난 영향이다. 런던 금시장에서 트로이 온스당 금 가격은 9월5일(현지시간) 1,546.1달러를 나타내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며 9일 기준 1,459.65달러까지 하락했다. 반면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톤당 구리 가격은 같은 기간 3.6% 늘어난 5,985달러로 7월25일 6,010달러를 나타낸 후 약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원자재 상장지수펀드(ETF)·상장지수증권(ETN) 시장에서도 금과 구리의 희비가 갈리고 있다. 이날 ‘신한 금 선물 ETN(H)’은 전 거래일보다 0.09% 오른 1만1,685원에 거래를 마쳤다. 9월5일 1만2,475원을 기록하며 연중 최고가를 기록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거듭하면서 6.4%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반면 ‘신한 구리 선물 ETN(H)’은 같은 기간 5.6% 오른 1만2,410원을 기록했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중국 측 거시지표 역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면서 안전자산보다 위험자산을 선호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상대적인 안전자산인 금은 약세를 보이는 반면 구리는 가격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구리 가격이 올해 상반기 수준을 밑돌고 있어 이 같은 가격 변동을 경기 회복 ‘시그널’로 인식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분석도 있다. 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수석연구위원은 “여전히 구리 가격이 올해 상반기 수준인 톤당 6,000달러대까지 올라가지는 못하고 있다”며 “중국 등 신흥국 시장에서 원자재 수요 회복이 전제된 상태에서 구리 가격이 상승해야 금 가격 대비 구리 가격 비율 반등을 경기 확장 시그널로 좀 더 유의미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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