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의 대표작가로 불리는 원로화가 박서보는 종종 “나는 단색화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은 “서양에서 다색주의에 대한 상대적 개념으로 등장한 모노크롬이 곧 단색화로 불리게 됐지만 (내 작업은) 근대화 과정에서 상실한 우리 자연관의 회복 운동이자 반(反) 개념미술로 ‘행위의 무목적성과 수행 같은 반복 행위’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색을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 만큼 ‘단색화’라 불리는 게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은 ‘단색화’는 지난 1970년대부터 국내 화단에 등장한 일련의 현대미술 경향으로, 단일한 색조로 화면 전체를 채운 형식, 반복적인 행위와 시간의 축적이라는 방식이 공통적이다. 거슬러 올라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전면점화’를 포함해 권영우·박서보·윤형근·이우환·정창섭·하종현 등이 대표작가로 꼽혔다. 해외 미술관과 개인들의 ‘단색화’ 수요가 늘면서 2014년을 기점으로 경매시장에서는 작품값이 3년 동안 평균 10배나 올랐고, 2016년 국내 경매 낙찰총액의 47%를 일련의 ‘단색화’가 차지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작품 한 점 값이 100만 달러 이상인 ‘밀리언달러 클럽’에 이우환에 이어 박서보·정상화도 이름을 올렸고, 글로벌 미술전문매체 아트넷이 집계한 ‘2010년대에 작품값이 가장 많이 오른 100대 작가’에도 이들 셋이 포함됐다. ‘단색화’와 그 영문표기 ‘Dansaekhwa’는 영국 테이트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 홈페이지의 미술용어 사전과 해외 포털사이트에서 통용된다. 하지만 제대로 된 미술계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 명칭은 태생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서울 용산구 박여숙화랑에서 개막한 기획전 ‘텅 빈 충만’은 ‘단색화’ 담론을 다시 불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기획해 지난 2014년 6월 중국 상하이 SPSI미술관을 시작으로 베이징, 독일 베를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브라질 상파울루,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란의 테헤란, 베트남 하노이까지 수 년간 국제 순회전으로 선보인 동명의 전시를 18명의 작가군으로 확대한 자리다.
영롱한 물방울이 마대 표면에 매달린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김창열을 비롯해 스밈과 번짐이 묘한 울림을 만드는 윤형근, 신문지에 볼펜·연필을 그어 새까맣게 채운 최병소, 전통 종이 재료인 닥을 주물러 ‘그리지 않은 그림’을 보여주는 정창섭, 고령토를 바르고 그 위에 채색하고 말리고 떼내고 칠하기를 거듭하는 정상화 등의 작품은 중성적 색채에 형상도 없이 심심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쌓인 시간과 수행의 기운이 전시장을 꽉 채운다. 자연친화적 미감을 대표하는 ‘달항아리’ 작가 권대섭, 장시간 노출 속에서 바삐 움직인 것들은 사라지고 멈췄던 것들만 남게 한 사진작가 김아타를 비롯해 김근태·김태호·남춘모·이진우 등이 ‘한국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을 보여준다.
정준모 기획자는 “‘모노크롬’의 번역어인 ‘단색화’란 명칭은 스스로 서구미술의 아류처럼 인식되게 했고 ‘색’에 갇혀 오히려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아쉬움을 남긴다”면서 “한국적 환원주의, 지물질주의, 담화(淡畵) 등 학자별로 달리 부르는 기존 ‘단색화’는 아직 연구자들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단색조회화’라 부르는 게 현재로서는 적합하다”고 말했다. ‘단색화’라는 이름은 지난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의 단색화’ 전시 이후 공론화를 거치지 못하고 통용되기 시작했으며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으로 열린 ‘단색화’ 전시와 일련의 학술서 등에서도 같은 이름이 공식 명칭처럼 사용돼 왔다. 전시는 5월10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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