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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자만 빠진 삼성 깨운 한마디 [이건희 별세]

■韓경제 체질 바꾼 프랑크푸르트 선언

싸구려 취급받는 삼성제품에 충격

"이러다 망한다...등허리에 식은땀"

2달간 해외 돌며 직원에 혁신 설파

'라인스톱' 파격 결단으로 불량률↓

재계 품질경영 도입 기폭제 역할

이건희 회장이 1993년 10월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200여명의 임직원들에게 품질경영을 강조하고 있다./사진제공=삼성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 극단적으로 얘기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 나는 앞으로 5년간 이런 식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 그래도 바뀌지 않으면 그만두겠다. 10년을 해도 안 된다면 영원히 안 되는 것이다.”(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회의)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이 한마디로 삼성그룹 제2의 창업을 이끌었다. 삼성그룹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했던 ‘국내 제일주의’라는 인식을 뒤바꿨다. 삼성은 품질혁신으로 세계적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했다. 디자인경영·인재경영·마하경영 등 다양한 혁신이 나오게 된 밑바탕에 신경영 선언이 있었다.

지난 1990년대 초반 삼성은 동남아시아 일부 시장에서만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뒀을 뿐 미국·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다. 1993년 2월 이 회장이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을 데리고 찾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현지 매장에서 삼성 제품은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박혀 있었다. 이 회장은 이를 가리켜 “삼성이라는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라는 이름을 쓰는가? 이는 주주·종업원·국민·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통탄했다.

당시 삼성 경영진의 관심은 오로지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만 있었다. 생산과 판매 수치에만 급급해 부가가치, 시너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들은 뒷전이었다. 이 회장은 당시 “이대로 가다가는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 6월4일 이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경영현장을 지도해온 일본인 고문들과 삼성이 지닌 고질적 문제점들에 대해 새벽까지 회의를 했다. 삼성전자(005930) 정보통신부문 디자인부서를 지도했던 후쿠다 다미오 고문은 “삼성은 상품 기획이 약한데다 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타이밍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아 사장단들과 끊임없이 토의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이 회장은 또다시 충격을 받게 된다. 세탁기 조립라인에서 세탁기 덮개 여닫이 부분의 규격이 맞지 않아 덮개가 닫히지 않자 직원들이 즉석에서 덮개를 칼로 깎아내고 조립하는 모습이 담긴 품질고발 사내방송을 본 것이다.

이 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1993년 6월7일 임원과 해외 주재원 등 200여명을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로 불러 모았다. 그렇게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이 나오게 됐다.

이 회장은 이후 신경영을 전파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1993년 6월부터 8월 초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도쿄에 이르는 대장정을 통해 이 회장은 사장단, 국내외 임원, 주재원 등 연인원 1,800여명을 대상으로 회의와 교육을 실시했다. 임직원들과의 대화시간은 350시간에 달했으며 이를 풀어 쓰면 A4용지 8,500장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삼성의 초일류를 향한 출발은 불량 추방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하고 제조 과정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다음 재가동하는 ‘라인 스톱제’를 도입했다. 생산물량이 밀려 있어도 라인을 멈춰야 했기에 생산 담당자들에게는 고역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컸다. 1993년 전자제품의 불량률은 직전해보다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줄어들었다.

신경영 선언은 당시 경제계에도 충격을 안겼다. 양적 성장에만 몰두한 채 내달리던 산업계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질적 성장도 함께 이뤄져야 함을 인식하게 됐다. 1993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그의 질(質) 경영을 자세히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이 신문은 “삼성 제품의 질적인 문제점을 외부인이 아닌 이 회장 본인이 제시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특이하다”며 “이런 개혁 캠페인은 삼성뿐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고질병을 치유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삼성의 영원한 라이벌인 LG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일사일품’ 운동을 전개하며 상품의 질 개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아시아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쓰비시·마루베니·스미토모·이토추 등 일본 9대 종합상사 지점들은 가장 경영을 잘하는 기업인으로 일제히 이 회장을 지목했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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