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1799)의 사인은 참으로 황망했다. 67세이던 어느 날 열이 나고 목에 심한 염증이 생겼다. 대통령 보좌관이 부른 주치의 3명이 워싱턴의 피를 뽑기 시작했다. 피를 뽑아내는 사혈(bloodletting)은 당시 가장 권위있는 질병 치료법이었다. 워낙 널리 쓰인 치료법이라 워싱턴도 망설임 없이 사혈을 요구했고, 의사들은 빨리 병을 낫게 하려는 욕심에 치료법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기록에 따르면 워싱턴은 12시간 동안 체내 혈액량의 절반 가까이를 뽑아냈다고 한다. 몇 시간 후 그는 사망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1788~1824)은 병상에서 사혈 치료를 거부했으나, 의사들의 고집으로 사혈 치료를 받은 후 목숨을 잃었다. 아무래도 이들 의사는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고 한 히포크라테스의 다음 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다. “위기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믿을 수 없으며, 결정은 어렵다.”
신간 ‘경험의 함정’은 경험에 의한 부정확한 선입견의 오류들, 경험의 이율배반성을 조목조목 지적한 책이다. 저자들은 경험을 “주변 상황과의 순간적인 상호작용(과정)이면서 그 결과로 우리에게 남은 교훈 모두를 포괄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경험은 ‘지식과 지혜의 기본 원천’이며 ‘삶의 소중한 길잡이’가 된다.
하지만 ‘경험에 속아’ 오판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경험 많고 실력있는 편집자들은 소설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원고를 보고 하나같이 출간을 거절했다. ‘제록스’는 사무기기의 혁명적 발명품인 PC를 개발하고도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해 출시하지 않았다. ‘에어비앤비’의 투자 제안서는 7곳의 투자 업체에서 거부당했다.
문제는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만의 고정관념’이 더욱 확고해진다는 점이다. 숙련된 경험에 기반한 ‘능숙함의 함정’은 창의성의 발목을 잡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도사리는 오류나 새로운 아이디어의 성공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주변 환경이 너무나 급격히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현재의 경험도, 조상들의 축적된 경험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또 하나, 경험에는 필터링과 왜곡 현상이 일어난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경험에서 얻은 중요한 정보는 누락되고 관련 없는 정보가 포함되기도 한다. 책은 타인의 성공 경험담을 배울 때 ‘정확성’을 주시하라고 했다. ‘사혈’을 예로 든다면 사혈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효과를 떠들고 다닐 테지만 죽은 사람들은 말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이 경험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신뢰하기 어려운 경험이 있음을 인정할 것, 맹신하는 대신 되묻고 냉정히 판단하는 식으로 경험을 통해 배우는 방식을 개선하자고 조언한다. 1만6,500원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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