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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물가 같이 올라도 "임금 인상" 착각

■한은 '화폐환상' 국내 첫 확인

실질가치 아닌 명목가치 중심 판단

착오 아닌 '합리적 무관심' 영향

"통화정책 때 명목변수도 고려해야"

한국은행 앞 /연합뉴스




A 씨는 2억 원에 집을 샀는데 1년 만에 물가가 25% 떨어진 뒤 1억 5,400만 원에 집을 팔았다. 다른 지역에 사는 B 씨도 2억 원에 집을 샀다가 1년 만에 물가가 25% 오른 뒤 2억 4,600만 원에 집을 매도했다. 두 사람 중에 거래를 잘한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A 씨다. 물가 변동을 감안한 실질 수익률을 봤을 때 A 씨는 물가가 크게 하락해 2% 이익을 냈지만 반대로 B 씨는 물가 급등으로 2%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인 2명 중 1명은 물가를 생각하지 않고 명목 수익률이 높은 B 씨가 거래를 잘했다고 착각한다.

물가 변동을 고려한 실질 가치가 아닌 명목 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른바 ‘화폐 환상(money illusion)’ 성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화폐 가치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실질적인 가치를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화폐 환상이 경제 변수가 되는 만큼 실질금리뿐 아니라 명목금리 흐름을 함께 고려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영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8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한국의 화폐 환상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18년 6~7월 서울 및 4대 광역시(부산·대구·대전·광주)에 거주하는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화폐 환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화폐 환상 성향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살펴본 질문에서 응답자 56.4%(282명)는 실질적으로 손해를 본 B 씨가 거래를 가장 잘했다고 답변했다. 반대로 실질 수익률이 가장 높은 A 씨가 거래를 가장 잘했다고 한 응답자 비중은 24.4%에 그쳤다. 나머지 18.2%는 물가 상승률 변동 없이 명목과 실질 모두 1% 손해를 본 또 다른 C 씨를 가장 거래를 잘한 사람으로 꼽았다.

또 물가와 명목임금이 각각 2%씩 상승한 경우 실질임금은 똑같지만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이 올랐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임금에서는 명목임금에 더 민감하다. 물가 상승률이 다른 상황에서 실질임금을 똑같이 7% 삭감했음에도 두 회사에 대한 공정성 평가는 달랐다. 예를 들어 물가 상승률 12%일 때 임금을 5%만 인상하는 회사(실질임금 인상률 -7%)보다 물가 상승률이 0%일 때 임금을 7% 삭감하는 회사가 더 불공정하다고 본 것이다.





연구진은 단순 계산 착오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화폐 환상이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화폐환상지수가 높은 경우가 나타났으며 인플레이션 변동 시 실질 가치 변화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화폐 환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다만 2018년 조사 당시 기준으로 3년 동안 물가 변동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명목 가치만으로도 실질 가치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던 만큼 물가를 의식하지 않아 화폐 환상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른바 ‘합리적 무관심’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택 가격 변동이 크게 나타나고 물가 인식도 달라진 올해 다시 조사한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화폐 환상이 가계 자산 축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방 거주자일 경우 화폐 환상이 클수록 가구의 순자산 규모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서울 거주자는 결과가 뚜렷하게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손실 회피, 준거점 의존성 등 다양한 형태도 관찰됐다. 손실 회피는 기댓값이 플러스(+)라도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게임이나 투자는 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손실에 대해 느끼는 고통이나 비효용이 같은 금액을 얻을 때 느끼는 행복감이나 효용보다 두 배 이상 클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준거점 의존성은 절대 금액보다 기준 금액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수익을 못 낼 것이라고 봤다가 100만 원을 번 사람이 250만 원 수익을 예상했는데 200만 원을 번 사람보다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우리나라에서도 화폐 환상이 관찰된 만큼 통화정책 운영 과정에서 명목금리도 살펴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부분 가계는 실질금리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응답자의 20~30%는 명목금리가 변해도 투자 계획을 바꾸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황인도 한은 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가계가 화폐 환상을 지니고 있다는 설문 결과는 거시경제 분석과 예측을 할 때 실질 변수 못지않게 명목 변수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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