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소셜미디어 기업 페이스북이 최근 ‘메타버스(현실과 같은 사회·문화·경제활동이 가능한 가상 세계)’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하며 회사 이름을 메타(Meta)로 바꿨다. 메타는 영어권에서 주로 접두사로 쓰여 초월의 의미를 가진다. 무한대(∞)를 뜻하는 회사 로고도 발표했다. 지난 2004년 창업 이후 17년간 대중의 인식에 깊게 박힌 사명을 변경하는 것은 그만큼 메타버스에서 미래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28일(현지 시간) 열린 연례 개발자 포럼인 ‘페이스북 커넥트 2021’에서 “우리는 데스크톱 시대에서 모바일 시대로, 문자에서 사진과 비디오로 변화해왔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라며 “메타버스가 모바일 인터넷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며 메타의 청사진을 강조했다. 그간 페이스북의 핵심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왓츠앱 등에 ‘페이스북이 만든(From Facebook)’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과감히 이를 떼내고 새롭게 브랜딩을 시도하는 것이다. 앞서 2014년 저커버그 CEO가 가상현실(VR) 헤드셋 제조 업체 오큘러스VR을 23억 달러(약 2조 5,000억 원)에 인수하면서 “오늘의 플랫폼은 모바일이지만 내일의 플랫폼을 준비할 때가 됐다”고 말한 것이 구체화된 것으로 보인다. 저커버그는 당시 "늦어도 10~15년 내에 큰 변화를 맞을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7년 만에 그가 오큘러스를 통해 메타버스 플랫폼을 주도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메타버스, 누가 먼저 깃발을 꽂느냐
메타라는 사명은 아직 초창기인 메타버스 생태계에서 핵심 어원을 차용해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겠다는 야심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구글이라는 검색 엔진이 검색을 하다라는 표현으로 쓰이는 것처럼 메타도 메타버스상에서 놀다는 표현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
메타버스 시장의 승부는 결국 하드웨어 플랫폼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달렸다. 플랫폼을 잡으면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 그런 관점에서 VR플랫폼인 오큘러스 이용자가 크게 증가한 점은 페이스북에 고무적이다. 이와 관련해 8월 앤드루 보스워스 페이스북 리얼리티랩 부사장은 “오큘러스 이용자 1,000만 명 목표를 조기에 달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VR 전문 매체 업로드VR도 연내 페이스북이 1,000만 이용자를 채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폰 3세대(3G)가 출시된 2008년 애플의 아이폰 전체 판매량은 1,163만 대였다. 메타버스가 시장 초기임을 고려하면 페이스북이 모바일 초창기에 아이폰에서 확보한 정도의 플랫폼 이용자를 잡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저커버그도 2019년 오큘러스 커넥트 행사에서 “VR 플랫폼이 개발자들에게 지속 가능하고 수익성 있는 생태계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1,000만 이용자를 넘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오큘러스의 점유율을 보면 페이스북의 위상이 드러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출시된 오큘러스 퀘스트2는 지난해 4분기와 올 1분기 연속 전체 VR·AR 헤드셋 출하량의 75%를 차지했다.
“두 번 다시 써드파티 앱이 될 수는 없어”
하드웨어가 앞서도 콘텐츠가 뒷받침돼야 이용자 록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2019년 VR 리듬 액션 게임사 비트게임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산자루게임스·레디앳돈·다운푸어인터랙티브 등을 연달아 인수했다. 콘텐츠 저변을 늘렸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디지털 화폐 지갑인 ‘노비(NOVI)’를 시범 출시하며 VR 생태계를 위한 경제 시스템도 마련했다.
페이스북이 선제 전략을 내세우는 데는 구글과 애플이 주도하는 모바일 생태계를 벗어나 새로운 하드웨어 플랫폼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크다. 애플 전문 분석가인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 연구원에 따르면 애플이 내년 2분기 중 AR 기반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기기를 출시할 수 있다. 애플이 메타버스 시장에 뛰어드는 만큼 이전에 시장 주도권을 굳혀야 한다는 게 저커버그의 생각이다.
페이스북은 지난 10여 년간의 모바일 시대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그 결과 ‘서드파티 앱(제조사·통신사에서 만든 기본 앱이 아니라 앱 마켓에서 내려받는 앱)’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4월 애플이 개인정보보호 정책을 변경하면서 이용자가 허용해야 데이터 수집이 가능해지도록 해 핵심 수익원인 광고 매출도 타격을 받았다. 이런 뼈아픈 경험이 저커버그를 과감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게 시장의 진단이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지난 25일 올 3분기 매출액 290억1,000만 달러(약 33조9,000억원)을 거뒀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금융정보 업체 리피니티브가 집계한 시장의 컨센서스(실적 전망치 평균)인 295억7,000만 달러를 밑돌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액은 35%, 순이익은 17% 성장했지만 지난해 4분기 이후 성장률이 가장 낮았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컨퍼런스콜에서 "애플의 개인정보 관련 약관 변경이 없었다면 매출이 더 증가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나쁜 소셜미디어 기업 종지부 될까
시장에서는 이번 사명 변경을 페이스북의 국면 전환용 카드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 페이스북은 위기다. 전 직원인 프랜시스 하우겐이 페이스북이 ‘10대에 미치는 악영향을 방임했다’는내부 문건을 폭로해 페이스북은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담배 회사만큼이나 해롭다”며 연일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영국 의회 청문회, 유럽연합(EU) 청문회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여기에 빅테크 관련 규제도 크게 늘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돌파구가 절실하다. 신규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중복 계정으로 이미 틱톡에 밀렸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저커버그 CEO는 메타버스가 보다 젊은 이용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핵심 키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페이스북으로서는 ‘나쁜 소셜미디어 기업’이라는 낙인을 지우고 국면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메타버스 드라이브는 규제 리스크는 물론 소셜미디어의 꼬리표를 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앞서 구글도 창업 17년 만인 2015년 모회사 알파벳 아래 각종 서비스를 재편하는 방식으로 구글이 더는 검색 엔진 회사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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