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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냉장고를 열어보면 생활습관·경제력이 보인다

■냉장고 인류

심효윤 지음, 글항아리 펴냄





조선 시대에는 냉동창고 서빙고와 동빙고에 얼음을 보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겨우내 한강의 채빙 부역에 동원됐다. 1970년대만 해도 시골에서는 우물 안에 통을 넣어 김치를 보관했고, 도시에서도 얼음 장수가 자전거에 얼음을 잔뜩 싣고 배달을 다녔다. 삼성전자는 아이스박스를 판매했고, 사람들은 이 박스를 채울 얼음을 사기 위해 얼음 가게 앞에 줄을 섰다.

지금이야 필수 중의 필수 가전인 냉장고가 국내에 등장한 지는 불과 50년 남짓이다. 국내에서 시판된 첫 냉장고는 1965년 출시된 금성사의 GR-120 '눈표 냉장고'다. 용량이 120ℓ에 불과했지만 이마저 자체 기술로는 만들 수 없어 일본 히타치사와의 기술 제휴로 제작됐다. 대졸 초임 월급이 1만1,000원이던 시절에 이 제품 가격은 무려 8만600원에 달했다. 당연히 대부분의 가정은 냉장고를 두지 못하고 파란색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보관해야 했다.



책 '냉장고 인류'는 인류학 연구자가 인간의 역사를 냉장고와의 관계를 통해 고찰한 냉장고 문명 추적기다. 저자는 냉장고가 시대와 세대, 나아가 국경을 넘어 인간의 생활 양식을 보여주는 창구가 된다고 보고 이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꼼꼼한 현지 조사와 가정 방문으로 발품을 판 저자는 미국 철도 산업과 함께 발전한 시카고의 냉장 기술, 국내에서 냉장고가 첫 출시된 과정, 계급과 지역별 냉장고의 현황, 베트남인과 고려인 등 각국의 냉장고 풍경까지 냉장고와 얽힌 삶의 변화를 다각도에서 다루고 있다.

책은 또 저자의 냉장고부터 전남 나주의 종갓집 냉장고, 광주 이주노동자들의 냉장고, 전기를 아끼기 위해 제작한 서울 불광동 카페의 아이스박스까지 사람들의 식습관과 생활 습관이 고스란히 담긴 냉장고 속을 들여다 본다. 타인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공간인 냉장고 속에는 삶의 향기와 음식 냄새가 풍기지만 다른 한편에선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과 햇반, 초콜릿 봉지가 나 뒹굴기도 한다. 특히 우리 사회 노인들의 냉장고를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대목이 흥미롭다. 영양제와 약재, 홍삼팩 등이 가득한 장수 욕망 타입, 눕혀진 소주병과 먹다 남은 빵이 차지한 노년 노동자 타입, 자녀가 없는 노인 1인 가구의 미니멀 타입 등이다. 이처럼 이 시대의 냉장고는 그 사람의 처지, 경제적 신분, 나아가 사회계급까지 비추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냉장고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각 시대마다 인간의 욕망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할 필수 도구로 발명된 냉장고는 어느 순간부터 점차 용량을 키운 냉장고는 이제 넘쳐 나는 음식물로 쓰레기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고 저자는 꼬집는다.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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