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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편한 곳인데”…'지역사회 낙인'에 밀려 사라지는 청소년 쉼터

23년간 3,260명 거쳐간 강남구 청소년쉼터

복지관 무상임대부지 대체할 곳 못찾아 폐쇄

적은 이용인원도 고려사항…"쉼터 이해 부족"

"쉼터에 대한 부정적 인식부터 개선돼야"

서울 강남구 청소년 쉼터의 생활실 내 부엌 공간. 강남구 청소년쉼터에는 두 개의 생활실이 있는데 1번 생활실에는 사물함과 거실 공간, 2번 생활실(사진)에는 부엌과 침실이 마련돼 있다./김태영 기자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수서동 태화사회복지관 6층에 위치한 강남구 청소년 쉼터 직원들은 쉼터 폐쇄를 앞두고 각종 행정 절차를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박건수 강남구 청소년쉼터 소장은 10년간 몸담은 쉼터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박 소장은 “이 곳을 거쳐 간 아이들에게 ‘아쉽다’는 연락을 요즘 많이 받는다”며 “가정에서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 그 자체로 의미 있는데 이대로 폐쇄해야 하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입소한 A(16)군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족 불화로 3년 전 집을 나와 강남구 청소년쉼터에서 6개월간 지냈던 A군은 가정에 복귀한 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다시 찾았다. 곧 폐쇄된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쉼터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정원이 넘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함께 지내던 친구도 이날 오후 다른 쉼터로 떠나 A군은 강남구 청소년쉼터의 ‘마지막 입소생’이 됐다. “집보다 편하고 나를 돌봐주는 선생님들이 있는 곳”이라고 강남구 쉼터를 설명한 A군은 퇴소가 목전에 다가온 지금도 어디로 가야할지를 정하지 못했다.

서울 강남구 청소년 쉼터의 생활실 내 침실 공간./김태영 기자


지난 1998년 설립돼 23년간 3,260명의 남성 청소년들을 돌봤던 강남구립 청소년쉼터가 오는 31일 문을 닫는다. 쉼터를 위탁운영하며 복지관 한 층을 무상 임대해주던 태화복지재단이 지난해 말 운영을 종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아직 대체 부지를 찾지 못한 탓이다. 쉼터 폐쇄의 핵심 원인인 ‘장소 문제’ 이면에는 청소년 쉼터에 대한 지역사회의 부정적 시선과 지역자치단체의 소극적인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구청에 따르면 강남구는 올해 쉼터 이전 비용으로 본예산 9억원에 추가경정예산 6억원을 합쳐 15억원을 마련했지만 결국 대체 부지를 찾는 데 실패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부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청소년 쉼터가 들어갈 자리’라고 밝히자 (임대인들이) 다들 꺼려했다”며 “청사를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봤지만 여유 공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강남구는 쉼터에 투입되는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구의회의 올해 8월 회의록에 따르면 강남구 관계자는 “(쉼터에 청소년이) 월 평균 7~8명만 입소돼 있는데 선생님들이 7~8명”이라며 “강남구 아동은 3년간 10% 미만인 22명만 입소했고 보호기간도 1개월 미만이었다”고 폐쇄 결정 이유를 밝혔다.

서울 강남구 청소년 쉼터의 복도에 입소생들이 만든 장식품들이 놓여 있다./김태영 기자


쉼터 측은 시설 운영에 대한 강남구의 의지와 이해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쉼터가 사라지면 강남구에는 곧 금천으로 이전할 쉼터와 7일까지만 이용할 수 있는 일시쉼터밖에 남지 않는다”며 “이용 인원이 적다고 해서 쉼터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쉼터를 제대로 활용할 대안을 고민하지 않고 폐쇄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역시 서울 전역에 청소년 쉼터가 부족한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높은 강남구가 시설을 존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협의를 이어갔지만 구청을 설득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근본적으로는 청소년 쉼터에 대한 주민 인식이 개선돼야 강남구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쉼터 유지 및 설치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4월 기준 전국 226개 시군구 가운데 쉼터(일시·단기·중장기)가 한 곳이라도 있는 지역은 73곳에 불과하다. 청소년쉼터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지자체가 쉼터를 만들려고 해도 주민 민원 때문에 후보지 선정부터가 잘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역주민들이 아이들을 ‘사회에서 보호할 대상’이라고 인식해야 지자체도 자체 예산을 투입해 쉼터를 운영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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