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녹색 분류 체계인 ‘K택소노미’가 산업 현실을 도외시한 채 추진되고 있다는 우려가 빗발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K택소노미 기준을 충족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 당장 활용이 가능한 블루수소도 제외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대로 K택소노미가 확정될 경우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지연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10월 K택소노미 적용 가이드안을 관계 부처 등에 배포했으며 이르면 이달 말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K택소노미는 한국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과 환경 개선에 기여하는 정도를 따져 무엇이 ‘친환경’인지 기존 표준산업분류체계처럼 목록으로 정하는 것이다. K택소노미에 포함되면 그린본드 발행, 금리 우대, 녹색 채권 투자 등의 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LNG 발전이 K택소노미에서 사실상 배제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K택소노미에 LNG 발전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LNG 발전이 녹색 활동으로 인정받기 위한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LNG 발전은 원전과 달리 전력 수급에 맞춰 하루에도 수차례 가동이 멈추고 재가동하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불가피하게 나온다”면서 “최신 기술을 적용한 최고 효율의 발전기로도 K택소노미 기준을 충족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대로 K택소노미가 확정되면 정부의 탄소 중립 대비도 요원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앞서 정부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오는 2034년까지 24기의 석탄 발전소를 LNG 발전소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LNG 발전이 K택소노미 혜택을 받지 못할 경우 금융 비용이 크게 증가해 발전소 준공이 늦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K택소노미는 수소 에너지 전환과 관련한 문제도 떠안고 있다. 환경부가 그린수소만 포함하고 블루수소는 제외했기 때문이다.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그린(신재생 전력 기반 생산)·블루(천연가스 추출 후 탄소 포집)·그레이(천연가스 추출) 수소 등으로 분류되고 이 가운데 그린수소와 블루수소는 100% 청정수소에 속한다. 이 때문에 환경부의 분류는 정부의 수소 정책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최근 김부겸 국무총리가 주재한 제4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2050년 연간 2,790만 톤의 수소를 그린수소와 블루수소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가 경쟁력과 에너지 수급 안정성을 훼손하는 녹색 분류 체계는 국민과 산업계로부터 동의를 얻기 어렵다”며 “재생에너지로 100%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K택소노미 분류 체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업계 의견을 수렴해 K택소노미 최종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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