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올겨울에 최대 9기의 원전을 가동하겠다고 공언했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원전 사고의 트라우마로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극히 제한해왔지만 때 이른 폭염으로 전력예비율이 전례 없이 떨어지면서 겨울철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자 결국 원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와 함께 화력발전소를 10기 늘리겠다는 방침도 밝혀 일본의 ‘탈탄소’가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전날 참의원 선거 후 처음으로 연 기자회견에서 “전력 피크 때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반대 여론이 적지 않은 원전 가동에 대해서는 “각 지방자치단체 관계자의 이해와 협조를 얻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전면에 나서 끈질기게 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시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총소비 전력의 10%를 확보할 계획이다. 일본에서는 25기의 원전이 재가동을 신청해 10기가 당국의 사용 승인을 받았지만 인근 주민들의 우려와 안전 공사 등의 이유로 현재 5기만 가동되고 있다. 제한적인 가동으로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 현재까지 원전의 전력 공급 비중은 6%에 불과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에는 이 비율이 약 30%에 달했다.
‘원전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정부가 원전 가동 확대를 천명한 것은 극도로 악화한 일본의 전력 수급 사정 때문이다. 6월 들어 각 지역의 기온이 섭씨 35~40도까지 치솟는 폭염이 이어지고 냉방 수요가 폭증하자 일본 정부는 지난달 말 사상 처음으로 ‘전력수급핍박주의보’를 발령했다. 일본의 전력예비율이 5% 밑으로 떨어졌다는 의미다. 일본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제재하면서 에너지 공급처가 제한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에너지난 극복을 위해 기시다 총리는 화력발전소를 10기 늘려 500만~800만 ㎾의 추가 전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내년 1월께 3%의 전력예비율을 달성하려면 200만 ㎾의 추가 공급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구체적으로는 노후 발전소 재가동, 건설 중인 화력발전소 조기 가동 등이 거론된다.
다만 이 같은 정부 계획이 전력 수급 개선에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블룸버그통신은 “연말 원전 9기 가동은 이미 지역 전력회사들이 세워놓은 계획”이라며 “엄격한 일본의 원전 가동 절차를 고려할 때 정부가 가동을 강제할 능력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지 않아도 화력발전 확충이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의 탈탄소 정책을 더욱 후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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