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닥친 유럽에서 뜻밖에 고대 유적이 속속 발견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진 강과 저수지 바닥에서 그 기원이 길게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1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로마 테베레강에서는 로마의 5대 황제인 네로 황제가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리 유적이 가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다리는 네로 황제가 강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모친 아그리피나의 저택으로 건너 가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또 북부의 또 다른 강인 포강의 수위가 70년 만에 최저치로 낮아진 탓에 이 강이 흐르는 피에몬테 지역에서는 고대 마을의 유적이 나타났고, 롬바르디아 오글리오강에서는 청동기 시절 목재 건축물 토대가 나왔다. 인근 코모 호수의 바닥에서는 10만년 전의 사슴 해골과 하이에나·사자·코뿔소의 잔해가 발견되기도 했다.
스페인 서부 카세레스주 발데카나스 저수지에서는 이달 초 선사시대 돌기둥이 역시 가뭄으로 낮아진 수위 영향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스페인판 스톤헨지, 공식 명칭 ‘과달페랄의 고인돌(Dolmen of Guadalperal)로 불리는 이 유적은 70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26년 독일 고고학자가 최초로 발견한 뒤 1963년 프랑코 독재 정권 치하에서 농촌 개발 프로젝트로 댐이 만들어진 탓에 침수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에서도 로마의 흔적이 나타났다. 북서부 갈리시아 지역에서 올 봄부터 기원후 69~79년에 건설된 로마의 요새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수지가 조성되면서 1949년에 물 아래로 잠겼던 이 유적은 현재 2만4000㎡ 규모의 면적 전체가 드러난 상태다.
유럽 중부를 가로지르는 엘베강이 흐르는 체코 북부 데친에서는 ‘기근석(hunger stone)’이 등장했다.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강물이 메마를 때 사람들이 이 기근석을 찾아 날짜와 자신들의 이름을 새겼다. 독일에서도 라인강이 흐르는 프랑크푸르트 남쪽의 보름스와 레버쿠젠 근처의 라인도르프 등지에서 기근석이 모습을 다시 나타냈다.
중국에서는 수백년 전 만들어진 불상이 발견됐다. 쓰촨성 러산시 양쯔강 상류 민장강, 칭이강, 다두강이 합쳐지는 지점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세계 최대 옛 석불인 러산대불(樂山大佛)이 전체 모습을 드러냈다. 링윈(凌雲)대불이라고도 불리며 높이가 71m에 달하는 러산대불은 당나라 시기 민강(岷江) 옆 높은 절벽을 깎아 만들었다. 쓰촨성 충칭시 양쯔강 유역에서는 만들어진 지 600년은 된 것으로 보이는 불상이 나왔다.
가뭄은 옛 전쟁의 흔적들도 다시 들춰냈다.
세르비아 항구도시 프라호보 인근 다뉴브강에서는 2차 대전 때 탄약과 폭발물이 실린 채로 침몰한 독일 군함 20여 척이 발견됐다. 이탈리아 포강에선 2차 대전 당시 침몰한 화물선과 나치 군용차 등도 발견됐다. 450㎏g에 달하는 대형 폭탄이 발견됐을 땐 해체를 위해 인근 주민 3000명이 일시 대피하기도 했다.
빙하가 녹고 있는 유럽 산악지역에서는 반세기 넘게 묻혔던 유골 등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다. 스위스 남부 헤셴 빙하 등지에서는 1970∼1980년대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등반객 3명의 유골이 수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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