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사회가 미국·영국 등 주요 선진국처럼 세율에 물가 상승률을 연동하는 방식으로 세법을 개정하자고 제안했다. 고물가로 인해 중산층의 세 부담이 가중하고 있어 제안한 것이다.
5일 세무 업계에 따르면 한국세무사회는 이달 4일 국민의힘 재정·세제개편특별위원회에서 “물가 상승에 의한 세 부담 증가를 완화해야 한다”며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초로 산출된 물가연동지수를 과표 구간, 세율, 공제에 연동하는 물가연동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재이 세무사회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부가 상속세 일괄 공제 상향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것이 물가연동세제에 있어서 기초적인 논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무사회가 물가연동제를 제안한 것은 인플레이션으로 명목소득과 재산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세법에서는 기본적으로 공제 한도와 과표 구간을 특정 액수로 고정한다. 이 때문에 실질소득은 그대로인데 명목소득이 증가하면 과표 적용 구간은 위로 올라가 한계세율도 높아진다. 인플레이션으로 각종 공제액의 실질 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미국·영국 등 19개 국가가 이로 인해 물가연동제를 채택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물가연동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4일 특위에서도 여당 의원 상당수가 물가연동제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2022년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제안한 바 있다. 민주당은 올해 총선에서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공약으로 추가하려다 최종 포함하지는 않았다.
재정 당국은 이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물가연동제에 따라 소득세 납부 인원이 더욱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세원이 줄어 정부의 재정적자 우려가 커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2022년 기준 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33.6%로 일본보다 2배 이상 높은데 물가연동제를 도입할 경우 납세자가 더 줄어들 수 있다. 세제가 복잡해지는 것도 정부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다. 물가 상승률에 따라 모든 과표와 공제 금액을 조정해야 하는데 이 역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한 세무 관계자는 “세법의 근간을 고쳐야 하는 일”이라며 “정치권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