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 대 8.4’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를 지역별로 분류했을 때 수도권과 비수도권 점유율을 각각 합한 수치다. 외국인 환자 유치에서도 현재의 ‘지방소멸’ 양상이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부산의 경우 비수도권 지역 중 외국인 환자가 가장 많이 찾지만, 점유율은 15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부산의 외국인 환자 점유율은 2010년 5%에서 15년 만인 지난해 2.6%로 반 토막 났지만 같은 기간 서울은 23.7%포인트 높아졌다. ‘서면 메디컬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명성이 무색하다. 지난해 경기(4.4%), 부산·제주(1.9%) 등 지방들 중에 외국인 환자 점유율이 5%를 넘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지난해 연간 외국인 환자 100만 명 시대가 열렸고 올해 외국인의 의료 소비 규모가 2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K의료관광이 지금의 기세를 확실히 이어가려면 지역별 특색을 갖춘 의료관광 상품 개발과 지역 병원들의 활발한 해외 마케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85% 넘어 쏠림 심화… ‘메디컬스트리트’ 부산도 반토막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외국인 환자 점유율은 전체의 85.4%로 나머지 지역을 합산해 비교해도 5.84배나 높다. 의료관광객들이 가격과 인프라 면에서 유리한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실력과 경험을 갖춘 의료진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리 잡은 결과라고 보고 있다. 김진국 한국의료관광진흥협회장은 “서울 강남권은 상급종합병원 4~5곳과 피부과·성형외과 병의원 여러 곳이 공존하고 있어 의료관광이 활성화되기 매우 좋은 조건”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인프라와 조건을 갖춘 도시를 찾아보기 드물 정도”라고 말했다. 이성형 루비성형외과 경영대표도 “강남에 있는 병원들은 임상 경험을 워낙 많이 쌓아서 실력이 좋을 수밖에 없다”며 “환자들도 그 결과를 보고 찾아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 수도권 쏠림 현상이 워낙 심각해 의료관광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수도권 편중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관광자원과 결합하는 등 특성화된 의료관광 전략이 필요하다. 김 협회장은 “단일 지역 차원이 아니라 여러 지역을 한 권역으로 묶어서 휴양과 진료를 결합해 의료관광 상품을 만드는 등 전향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지방 의료 강화에 나서고 있다. 부산의 경우 의료 특화 거리 ‘서면 메디컬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인플루언서 초청 행사, 의료기관별 외국인 환자 통번역비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광주는 몽골 의료관광객을 겨냥해 몽골 국영은행과 공동으로 ‘건강검진 맞춤형 적금’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적금 만기 시 광주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피부·성형 편중도 극복 필요…K의료 우수성 알려야
K의료관광의 또 다른 과제는 피부과·성형외과 쏠림을 해소하는 것이다. 지난해 진료과별 점유율에서 피부과·성형외과 비중을 합하면 68.0%로 70%에 육박했다. 특히 피부과 환자가 전년 대비 3배 가까운 194.9%나 급증해 70만 5000명에 달했다. 내과통합이 전년 대비 2배가량 늘어나며 점유율을 10.0%로 끌어올렸고 검진센터도 가성비 등이 부각되며 4.5%로 점유율 4위에 올라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김동현 복지부 보건산업해외진출과장은 “한국 의료 서비스에 대한 해외의 인식도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화장품에 대한 호감도와 수요가 높다”며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뷰티를 통해 의료관광객이 유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한국 의료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암 생존율이나 장기이식수술 후 생존율, 세계 상위권인 주요 수술 실력 등 데이터를 조사해서 전 세계적으로 홍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과장은 “한국 의료기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톱 수준”이라며 “국내 기관 차원에서 이를 적극 알리려 많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성비’ 이끈 부가세환급 올해 일몰… 업계 “연장돼야”
외국인 환자들이 한국에서 쌍꺼풀수술 등 미용·성형 진료를 받았을 때 제공하는 부가가치세 환급(택스프리) 혜택도 올해 말 일몰을 앞두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조세 당국과 협의를 통해 외국인 환자 대상 부가가치세 환급 제도의 일몰 연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는 2016년 4월부터 ‘외국인관광객 미용성형 의료용역에 대한 부가가치세 환급 특례’를 통해 미용·성형 진료에 대한 부가가치세 환급을 실시 중이다. 복지부 등록 외국인 환자 유치 의료기관에서 쌍꺼풀수술·코성형술·지방흡입술·안면윤곽술 등 16개 미용·성형 진료를 받은 외국인이 대상이다. 공항 등 출국장이나 도심 환급기·창구에서 환급해준다. 이 제도가 시행된 후 지난해 말까지 총 182만여 명이 환급 혜택을 받았다. 누적 환급액은 2044억 원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외국인 환자가 급증하며 103만여 명이 진료 후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았으며 액수도 955억 원으로 1000억 원에 육박했다.
의료계와 관광 업계는 한국 의료관광의 핵심 경쟁력인 ‘가성비’를 유지하려면 부가가치세 환급 혜택은 연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홍승욱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외국인환자유치단장은 “환급된 부가세가 국내에서 소비를 진작하고 재방문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며 “외국인 환자 유치 과정과 진료비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피부·미용·성형 분야 세제 혜택이 필수의료 인력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정부는 “과도한 우려”라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외국인 환자 유치 의료기관으로 지정한 곳은 총 4348곳으로 국내 전체 병원 수가 8만 개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많지 않은 수준”이라며 “외국인 환자 수는 국내외 전체 환자의 0.1% 수준으로 국내 의료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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